“삼성전자(005930)의 미래 먹거리 발굴 성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대책이 무엇입니까.” “인수합병(M&A)이 계속 부진합니다.” “경영진의 답변이 너무 두루뭉술합니다.”
15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 현장. 이날 120분간 열린 행사에서 주주 600여 명의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받은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은 진땀을 뺐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8.92%나 하락한 4조 3100억 원을 기록했다. 물가·금리 상승으로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가 급격하게 쪼그라들면서 실적이 대폭 악화한 것이다. 게다가 증권 업계 일각에서는 올해 1분기에 회사가 적자를 볼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주주들은 행사장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한 삼성전자 주주는 2021년 초 9만 원을 돌파했던 삼성전자 주가가 어느새 6만 원대에 턱걸이하는 사실을 내세우며 “삼성전자는 주가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며 “주주들을 물로 보는 거냐”고 소리 치기도 했다.
삼성 경영진 “올해도 경영 환경 녹록지 않아…주주 의견 다각도로 고민 중”
주주총회 의장을 맡은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대표로 나온 이정배 메모리사업부 사장 등 경영진은 올해 시장 불확실성을 언급하면서도 주주들의 우려를 안심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한 부회장은 “말씀해주신 내용을 저희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으며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심도 있게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전자 경영진은 미래 먹거리 발굴 계획, 수년째 전무한 대형 인수합병(M&A) 추진에 대한 주주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로봇, 인공지능(AI), 자동차 부품(전장) 등 크게 세 가지 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부회장은 향후 본격화할 로봇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다양한 로봇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고객이 실생활에서 로봇 경험을 확대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로봇 상용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부터 로봇사업화 태스크포스(TF)를 ‘로봇사업팀’으로 격상했다. 올해 초에는 590억 원을 투자해 레인보우로보틱스라는 국내 로봇 회사의 지분 10.22%를 인수했다. 사내 신제품 로봇 개발에도 한창이다. 한 부회장은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CES 2023 전시회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보행 보조 로봇 등 다양한 제품군의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또 자동차 전장 산업도 제시했다. 전장 사업은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과 DS 부문 모두 주목하고 있는 시장이라고 밝혔다. 한 부회장은 전장용 오디오 전문 회사인 자회사 하만에 대해 “지난해 반도체 공급 부족, 물류망 마비 현상에도 불구하고 2016년 인수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하며 “제품, 원가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관측했다.
이 사장도 “DS 부문에서 칩 사업을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는 맞춤형 칩 개발로 신사업 역량 강화와 사업 규모의 확대를 노린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 퀄컴에서 자율주행 칩 전문가인 베니 카티비안 부사장을 영입하며 차량용 반도체 사업의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유럽 최대 완성차 업체인 BMW와 차량용 반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AI 분야 사업 확장을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사장은 지난해 11월 출시 이후 AI 시장을 강타한 생성형 AI ‘챗GPT’ 시너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챗GPT는 삼성전자 제품, 서비스와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런 대규모 AI 모델은 미래 반도체 수요에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삼성전자 DS 부문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중장기 관점에서 꾸준한 설비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전략도 내놓았다. 이 사장은 “설비투자는 시황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클린룸 확보, 미래 투자는 지속할 것”이라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은 인프라 선제 구축을 통한 생산능력 확보로 고객 수요에 적기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기(009150) “'자동차 전장 사업'이라는 파도에 올라탈 것”
삼성의 전자 분야 계열사 삼성전기는 올해 주총에서 자동차용 부품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전장 부품 위주로 사업을 재편해 회사 체질을 바꾼다는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로봇과 항공우주, 그린 에너지 관련 부품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할 방침이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15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제50기 삼성전기 정기 주주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전 사업군에 걸쳐 자동차용 부품 매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전장 사업 성장이라는 파도가 오고 있는 상황에 준비를 잘해서 그 파도에 올라타려고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기가 자동차 부품사로의 변신을 선언한 배경에는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자리잡고 있다. 통상 일반 내연 자동차에는 MLCC가 3000개가량 들어가는 반면 자율주행차에는 1만 5000개의 MLCC가 들어가기 때문에 전기차 시장이 커질수록 MLCC 수요도 늘어나는 구조다. MLCC는 반도체에 공급되는 전력량을 일정하게 공급하는 핵심 부품으로 전자제품 전반에 광범위하게 쓰여 ‘산업의 쌀’이라고도 불린다.
한편 삼성전기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낸 최종구 라이나전성기재단 이사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배당액은 보통주 2100원, 우선주 2150원으로 총 1588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