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5일 반도체 업계에 정말 큰 뉴스가 있었죠.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시에 2042년까지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 5개를 구축한다는 소식입니다. 20년 동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에 300조원을 투입한다고 합니다. 홍수처럼 쏟아진 삼성전자 투자 뉴스 속에서 빠짐없이 언급된 회사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라이벌 대만 TSMC입니다. 삼성이 용인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늘리면 업계 50%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TSMC를 본격적으로 추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TSMC는 반도체 생산 능력이 얼마나 되는 걸까. 삼성전자는 지금부터 얼마나 더 많은 팹을 설립해야만 TSMC의 생산 능력을 잡을 수 있는 걸까.
이번 기사에서는 이 물음에 대해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시장 데이터, 그간 나왔던 기사와 회사 홈페이지 자료 등으로 대만 TSMC의 팹 위치와 생산 능력을 따져봅시다. 이어서 준비한 2편에서는 TSMC를 중심으로 갖춰진 대만의 탄탄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도 짚어보려고 합니다. 반도체 업계에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마치 '파운드리 더비'를 보는 마음으로 즐겨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대만 지도를 펼쳐 놓고 TSMC 공장 위치와 생산 능력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대만의 절반이 ‘TSMC 벨트’
대만은 3만6000㎢ 면적을 가진 나라입니다. 남한 면적의 약 3분의 1 크기입니다. 그런데 TSMC는 말이죠. 위 지도처럼 대만 땅의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나라 구석구석에 둥지를 틀어 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1987년 TSMC가 문을 열면서 만든 '팹(Fab) 1'이 탄생한 땅, 본사가 있는 대만 북부 신주과학단지가 눈에 띕니다. 신주과학단지에서 밑으로 쭉 따라 내려오면 팹 15가 있는 타이중·각종 첨단 공정 거점이 있는 남쪽 지방의 타이난·새로운 공장이 구축되고 있는 가오슝까지 도달합니다. 가오슝부터 신주과학단지까지 거리는 277km. 자동차를 타면 3시간이면 갑니다. 다시 멀리서 지도를 보면 TSMC는 대만 서부를 중심으로 반도체 벨트를 만든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경기도 남부인 평택-화성-용인을 잇는 K-반도체 벨트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런데 TSMC는 대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도 있고, 중국에도 공장이 있습니다. 일본에도 공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TSMC가 한 달 동안 생산하는 반도체 양은 어느 정도일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가 지난해 12월에 낸 자료를 기준으로 따져봤습니다. 현재 '풀가동'을 하고 있거나 외관 공사를 끝내고 설비를 채우는 것으로 알려진 '팹(Fab)2'부터 '팹18'까지 총 13개 공장 생산 능력만 더해봤습니다. 6인치, 8인치(200mm), 12인치(300mm) 웨이퍼를 8인치 웨이퍼로 환산하면 월간 335만 6938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12인치 웨이퍼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간 약 149만장 웨이퍼를 만들 수 있는 생산 능력이네요.
그럼 이제 TSMC를 쫓는 삼성전자 현재 생산 능력과 비교해봅시다. 지난해 10월 한 세미나에서 씨티증권에서 낸 자료와 업계 정보를 종합한 수치인데요. 이들이 분석한 올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산 능력은 8인치 웨이퍼 기준으로는 월 103만7500장, 현재까지 TSMC 생산 능력은 삼성전자보다 거의 3.24배 많은 생산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만큼 차이 나지만 앞으로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TSMC가 현재 짓고 있는 신규 공장을 가동하면서 더 앞으로 치고 나갈 수도 있고요. 삼성전자도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용인 클러스터·미국 테일러 부지에 상당히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전개하면 월간 생산 능력을 뒤집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다만 현재 파운드리 1위와 2위 사이 간극을 인지하면서 두 회사의 움직임을 살피면 훨씬 세밀하게 업계 판도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듯 합니다.
6인치 파운드리부터 3나노 공정까지 갖춘 TSMC
전반적인 생산 능력을 계산해봤으니 이제 TSMC 주요 팹들을 하나씩 들여다 봅시다. TSMC는 대만 공장부터 일본·미국 등에 설립되고 있는 해외 거점까지 합치면 총 17개 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먼저 TSMC 본사가 있는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팹2' 부터 한번 보려고 하는데요. 팹2의 가장 재밌는 특징은 '6인치' 웨이퍼 파운드리라는 겁니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는 8인치 웨이퍼를 사용하는 공정만 해도 '레거시(legacy)'라고 부릅니다. 삼성전자,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IC, 키파운드리 등 국내 파운드리 회사들도 6인치 파운드리는 따로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6인치 파운드리는 반도체 업계에서 진짜 그냥 완전 옛날 공정 축이라는 얘기죠. TSMC가 얼마나 다양한 공정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6인치 파운드리 규모는 월 9만5000장, 8인치 웨이퍼로 환산하면 5만장 정도입니다. 주로 0.45마이크로미터(450㎚) 공정으로 반도체를 만든다고 하네요.
코로나19 시기에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던 원조 레거시 8인치 웨이퍼 공장도 7개나 있습니다. 대만에는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팹3·5·8, 섬 남쪽 타이난에 위치한 팹6가 있고요. 특히 팹6의 8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은 월 18만장입니다. TSMC의 8인치 파운드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큽니다.
나머지 8인치 팹은 해외에 있습니다. 팹10은 중국 상하이에 있습니다. 규모는 월 12만장 수준입니다. 요즘 첨단 파운드리 건설 붐이 일어난 미국에서는 이미 8인치 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웨이퍼텍(Wafertech)'이라는 회사인데요. TSMC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팹11로도 명명하고 있습니다. 북미 고객사를 위한 칩을 만드는 공장으로 추정됩니다.
싱가포르에도 TSMC 8인치 웨이퍼 팹이 있습니다. SSMC(Systems on Silicon Manufacturing Company)라는 회사입니다. 1998년에 TSMC가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와 조인트 벤처 형태로 만든 파운드리입니다. 8인치 웨이퍼 기준 월 4만 장 규모 팹입니다.
TSMC의 대만 팹 4개·중국·미국·싱가포르 공장의 8인치 생산 능력을 모두 합하면 월 62만6000장 규모가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기흥캠퍼스 8인치 파운드리 생산 능력은 6라인과 7라인을 합쳐 월 25만장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 이제 가장 뜨거운 영역인 12인치 웨이퍼 공장으로 넘어갑니다. 먼저 본사가 있는 팹 12를 살펴봅시다. 90나노부터 7나노 공정까지 적용했다고 하는데요. 팹 12부터는 공장 이름 아래 여러 개 동(P·Phase)이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팹12의 경우 P1부터 순서대로 P9까지 구역이 나눠집니다. 이 공장은 TSMC의 핵심 R&D 라인도 가지고 있는데요. 팹12의 월 생산 능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22만장입니다.
12인치 웨이퍼 공장 기준 TSMC는 대만 11시 지역 신주과학단지 본진과 함께 7시 타이난, 10시 방향 타이중 지역 등 2개의 앞마당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이중는 7나노부터 40나노까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팹15가 있습니다. 타이난에는 팹14, 2020년부터 5나노 공정을 가동한 팹18이 위치하고 있죠.
그런데 팹12, 15, 18. 이 세 팹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극자외선(EUV) 공정 라인을 설치해 놓았다는 겁니다. TSMC는 2019년 N7+라는 공정 브랜드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 EUV를 도입했다고 공식 발표했죠. 이후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등 내로라하는 반도체 회사들이 TSMC를 찾아가서 EUV 공정 주문을 맡겼습니다. 지난해 4분기 7나노, 5나노 공정에서 나온 매출만 TSMC 전체 매출의 54%입니다. 미세 공정 분야에 EUV를 적용하면서 제대로 재미 보고 있다는 얘기죠.
이들 3개 공장에는 100대 이상의 네덜란드 ASML EUV 기기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EUV 노광기는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대당 2000억원 가격을 호가합니다. TSMC는 ASML에 “생산할 수 있는 모든 EUV 노광기를 달라”는 주문을 했을 만큼 기기 확보에 진심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EUV 노광기 대수는 메모리 공정용 기기를 포함해서 연초 기준 40대 안팎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삼성전자는 2019년 7나노 세계 최초 양산에 이어 지난해 6월 EUV 기반 3나노 반도체를 가장 먼저 생산하며 기술을 앞세워서 추격하는 모습입니다. TSMC 역시 지난해 12월 팹18을 중심으로 3나노 양산을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때 이들은 2나노 양산 계획도 밝혔는데요. 신주 또는 타이중 지역에서 생산할 거라고 귀띔했습니다. 2나노 생산 공장은 뒤에 조금 더 자세히 나올 '팹20'이나 기존 '팹15'에서 이뤄질 확률이 상당히 높겠습니다.
TSMC의 팹 12·15·18, 그리고 EUV 공정이 없는 웨이퍼 공장인 팹14의 생산 능력을 더하면 TSMC 월 반도체 생산량은 113만 장 수준으로 계산됩니다.
요즘 미국과 반도체 갈등이 심화하는 중국의 난징에도 12인치 공장 ‘팹16’이 있습니다. 월 6만장 규모, 최대 28나노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인데요. TSMC는 2021년 4월 이사회에서 난징 공장에 28억8700만 달러(약 3조7800억 원)을 추가로 투자해 28나노 생산 라인을 증설한다고 밝힌 적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규제에도 이 설비 증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TSMC 입장입니다. 당시 TSMC는 중국 시장에서는 규제에 맞춰 시장 수요에 대응한다는 전략을 강조했습니다.
대만·미국·일본에 새 공장 짓는 TSMC
그러면 1탄의 마지막으로 TSMC가 만들고 있는 신규 공장도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먼저 대만 내 신주과학단지 내 '팹20'. TSMC 본사가 있는 팹12 바로 옆에 지어지고 있습니다. TSMC 최초의 2나노 공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5년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습니다. 또 타이난 아래에 있는 가오슝이라는 지역에도 새로운 공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2024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인데요. 외신에 따르면 TSMC는 당초 이곳에 7나노 라인을 이곳에 설치한다고 했으나, 수요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설치를 잠깐 미루고 28나노 라인을 먼저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8만장 규모 공장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만의 ‘칩4’ 동맹국인 미국에도 공장이 지어지고 있는데요. 미국 애리조나의 ‘팹 21’의 경우 당초 2024년에 5나노 라인으로 가동하려던 공장을 4나노 공정으로 업그레이드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투자액을 기존 3배 수준인 400억 달러(약 53조 원)로 늘려 3나노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애리조나 2공장을 건설하겠다고도 발표했죠. TSMC가 이 내용을 발표한 자리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팀 쿡 애플 CEO 등 미국 정·재계 거물들이 참석해 미-대만 반도체 동맹의 굳건함을 여실히 보여줬죠.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 지역에 ‘팹23’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착공에 들어간 이 공장은 2024년 가동 예정이고,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5만5000장 규모 공장으로 기대됩니다. 이곳에서는 10~20나노 급 자동차·산업·가전용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소니, 도요타 자회사 덴소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이 공장 투자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1탄에서 TSMC 전공정 팹을 두루 살펴봤다면, 이어지는 2탄에서는 대만 TSMC를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