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에요. 전세계적으로 한 해 1억 마리 이상,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488만 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희생됐어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동물자원센터는 매해 이날 죽은 실험 동물들을 위한 위령제를 열어 인간을 위해 죽어간 동물들을 기리죠. 죽은 동물들을 잊어서도 안되지만 앞으로 동물들이 더 이상 희생하지 않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도 들어요.
사실 다른 소비재와 다르게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보니, 신약에 대해서 만큼은 '동물 실험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으실 거에요. 에디터 역시 동물 실험을 무작정 중단하자고 하기엔 이 '안전성' 문제가 계속해서 걸리더라고요. 지난 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동물대체시험법 제정안 통과를 위한 민·관 협동 토론회)에 참여한 뒤 동물 실험을 대체할 많은 기술들이 나와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동물 대체 실험 결과를 '정식 실험'으로 인정하기 위해 법안도 제출된 상황이고요. 그 신박한 기술들이 과연 어떤 기술이며 신뢰도는 얼마나 되는지, 오늘 용사님들께도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단지 동물이 불쌍해서가 아닌
미국에선 올해부터 신약 개발할 때 동물실험을 하지 않아도 돼요. 대신 비동물 실험이나 화학적 실험 결과를 제출하면 되죠. 의약품 허가시 동물 실험을 의무화한 지 84년 만의 변화에요. 이렇게 바꾼 이유는 단순히 동물들의 희생이 안타깝고 불쌍해서가 아니라, 동물 실험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신약 후보 물질 중 90%가 동물 실험에 성공하고도 최종 임상 시험에서 실패했어요. 사실 당연한 얘기죠. 종이 다르면 유전 정보나 면역 체계도 다르니까요. 이런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도 동물 실험은 금지되는 추세에요.
네덜란드 : 2003년 연구용 영장류 금지법 제정
유럽연합 : 2013년 동물 실험 거친 화장품 판매 전면 금지
영국 생어연구소(세계 유수의 유전체 연구소) : 2019년 동물 실험 시설 폐쇄
한국 : 2017년 화장품 동물 실험 금지,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 관련 법안 계류 중.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2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요. 바통을 이어받아 2022년엔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한정애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어요. 유사한 내용으로 법률안을 두 개 낸 이유는 국회에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협공(!) 목적이라고. 나중에 법률을 실제 만들 때엔 두 개의 유사 법률안을 병합, 보완해서 하나로 만들게 된다고 하네요.
이 작은 칩이...간이라고요?
자, 그렇다면 동물 대체 시험 기술은 어느 정도로 진보했을까요? 생각보다 많은 대체 시험법들이 개발돼있고 일부는 상용화 문턱까지 간 경우도 있어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대체 시험법 4가지를 간단히 소개해드릴게요
①세포 기반 분석법
실험실에서 배양한 인체 세포로 실험하는 방법. 세포 자체만 이용한 실험이기에 약물이 인체 안에서 어떤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지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②오가노이드
바이오 프린팅(세포와 생체 물질을 활용한 '바이오 잉크'를 원료로 3D프린팅 기법을 통해 인체의 장기를 구현하는 기술) 등으로 만든 인공 장기를 오가노이드라고 불러요. 단일 세포가 아닌, 실제 인간의 장기와 비슷한 구조에서 약물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하지만 현재 구현할 수 있는 장기 크기가 매우 작고, 혈관을 삽입할 수 없어 세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대요.
③장기칩
전자회로를 놓은 칩(위 사진 참조) 위에 사람 장기 세포를 배양하는 기술. 장기 내에 일어나는 생리 현상을 구현할 수 있고 혈관 역을 대체할 수 있는 미세 유관으로 세포를 연결해 영양, 혈액 등을 공급할 수도 있어요. 혈관없는 세포 덩어리에 가까운 오가노이드를 장기칩 위에 올리면 세포끼리 연결돼 세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도 볼 수 있다고. 현재 간과 신장, 척수, 심장 등 15가지가 넘는 장기칩이 개발됐어요.
④컴퓨터 모델링
인간의 세포나 장기 없이 오직 컴퓨터 프로그램만으로 복잡한 인체를 가상으로 구축해 신약을 검증하는 방법이에요. 마치 슈퍼컴퓨터로 복잡한 지구의 기상을 파악해 날씨를 예측하는 것처럼요. 아직까진 복잡한 생리현상을 정밀하게 구현하지는 못해 후보 물질을 찾는 수준으로 사용 중.
이 가운데서도 장기칩의 경우 정확도가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어요. 장기칩 개발 회사인 에뮬레이트에 따르면 사람 간을 모사한 장기칩에 27개 신약 후보 물질을 대상으로 실험했더니 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을100% 정확도로 골라냈다고. 참고로 에뮬레이트는 2010년 사람의 폐 기능을 재현한 장기칩 개발에 성공한 도널드 잉버 미국 하버드대 생명공학과 교수가 2013년 설립한 기업으로 장기칩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곳.
어때요? 벌써 동물 대체 실험을 위한 판이 상당히 깔려있죠? 화장품 동물 실험 폐지가 이뤄진 것처럼 국내에서도 신약 동물 실험 금지가 어서 빨리 실현됐으면 좋겠어요. 더이상 동물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또 인체에 더 효과적인 신약이 개발될 수 있도록요. 그러기 위해선 기술 발전도 중요하지만 법적 기반이 필요해요. 앞으로의 동물 대체 시험법 행보에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