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원이 20일(현지 시간) 엘리자베트 보른(사진)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표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 법안 강행에 반발해 프랑스 전역에서는 시위가 이어지는 등 야권과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모양새다.
이날 오후 4시께 프랑스 하원 측은 앞서 17일에 야당이 제출한 두 건의 총리 불신임안에 대해 토론한 뒤 투표를 진행했다. 각 불신임안은 좌파 연합 뉘프(NUPES)와 중도정당 소속 의원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 이는 앞서 16일 보른 총리가 연금개혁 법안 입법을 확실히 못 박기 위해 하원 표결을 건너뛰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나온 저항 수단이다. 프랑스 헌법 제49조 3항에 따르면 긴급 사태 시 정부는 의회를 건너뛰고 입법할 수 있다. 르네상스 등 집권당 의석(250석)이 전체 577석 가운데 과반(287석)에 미달해 연금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해 마크롱 정부가 이같은 이례적 조치를 취하자 야당 역시 24시간 내로 불신임안을 발의하며 '내각 총사퇴'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다만 표결을 앞두고 불신임안은 이미 부결이 확실시됐다. 재적의원 과반 이상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중도우파 공화당(61석)이 불신임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은 "불신임안이 통과되려면 급진 좌파부터 극우파 정당까지 야권 전체가 전례 없이 뭉쳐야 한다"며 이들이 단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평했다.
한편 마크롱 내각을 향한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에 따르면 9일~16일 진행된 여론 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월 대비 4%포인트 하락한 28%를 기록했다. 2018년 12월 노란 조끼 시위 시기(23%)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16일부터 4일 연속 프랑스 전역에서 개정안 반대 시위가 열리며 폭력 사태까지 발생한 데 이어 23일에는 주요 8개 노동조합의 제9차 시위가 예고되는 등 불신임안 부결 이후에도 반발 움직임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