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바이오

이상만 좇던 집착은 일상을 잃은 절망뿐…그녀의 때늦은 후회

[리뷰 뮤지컬 '호프']

'카프카 유작 원고' 소유권 놓고

주인공 호프의 30년 재판 다뤄

"잃어본적 없는 사람은 모른다"

하나에 집착한 삶 항변하지만

결국 모두 떠나고 나홀로 남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일깨워







체코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실존주의 작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고, 사후 재평가 받았다. 후대가 카프카의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된 데는 ‘모든 원고를 태워달라’는 그의 유언을 듣지 않고 세상에 알린 친구 막스 브로트의 공이 크다. 그는 카프카의 소설 일부를 출간하고, 나머지는 비서인 에스더에게 전달했는데, 에스더는 죽음을 앞두고 이 원고를 두 딸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후에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유족들에게 카프카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기나긴 재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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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호프(HOPE)’는 바로 이 위대한 소설가 카프카(극 중 요제프)의 유작 반환 소송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소설을 넘겨받은 (실화에서 두 딸 중 한 명에 해당하는) 딸 에바 호프. 하지만 극은 요제프의 소설의 가치보다 이 원고를 쥔 호프의 인생에 집중한다. 호프는 30년간 원고 소유권을 두고 지리한 재판을 이어간다. 세상은 그를 ‘돈에 미친 78세 노인네’로 몰아가지만 호프가 원고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광기’나 '돈'이 아니다. 극중 “잃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몰라. 전부를 잃고 남은 게 하나라면 사람은 그 전부를 위해 난 모든 걸 걸어”라는 호프의 대사처럼 전쟁에서 살아남은 호프에게 원고는 인생에서 남은 단 하나다. 가족과 친구와 사랑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모든 것이기도 하다. 30년 간 홀로 원고와 살아가는 호프의 모습은 물건, 자산, 사람, 명예, 자리에 한 번이라도 집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뮤지컬 ‘호프’에서 관객의 감성을 끌어올리는 요인은 비단 대사와 배우들의 열연 뿐만이 아니다. 갈등의 소재인 원고를 ‘K’로 의인화해 호프와 끊임없이 대화하도록 하는 신선한 발상은 호프가 인생에서 원고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다시 그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과거 호프’, 호프의 엄마 ‘마리’가 각각 1인 2역으로 연기한 점도 눈에 띈다. 중소극장 뮤지컬과 연극에서는 캐스팅 문제로 흔히 등장하는 1인 2역 방식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과거의 호프가, 죽은 엄마가 현실에서 각각 환생한듯 호프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관객이 1인 2역 설정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무릎을 ‘탁’하고 칠만한 기획력 덕분에 극은 ‘인터미션(공연 중 쉬는 시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결말 부분에서 원고 ‘K’는 호프에게 외친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라고.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견 없는 탄탄한 작품성을 토대로 한 뮤지컬 ‘호프’는 오는 6월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진행된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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