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로봇개발 업체의 대표로부터 우리나라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로봇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 산업 현장에서 로봇이 다양하게 이용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물건을 배달하거나 식당에서 그릇을 수거하는 등의 일상적인 업무에서도 로봇은 빠른 속도로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다. 챗GPT(ChatGPT)는 놀라운 자연어 처리 기술을 보여주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업무 파일을 스스로 생성하는 코파일럿(Copilot)을 선보였다. 기술직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사무직이나 전문직 종사자들도 인공지능에 대체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주 69시간 근무’ 논란을 보면 어떤 고민도 철학도 보이지 않는다.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며 한 주에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한다. 하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주 120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주 69시간이면 많이 봐준 셈인가? 아무리 봐도 너무한다 싶었는지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했다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는 주 52시간 이상 더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법에 가로막혀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주 69시간 근무제를 잘 활용하면 몰아서 일하고 쉴 수 있어서 이른바 MZ 세대의 풍토와 잘 맞는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런가. 주요 외신들은 안 그래도 저출산과 과로사(kwarosa) 문제가 심각한 한국에서 이런 정책을 내놓는 것에 의문을 표하면서 노동 시간을 줄이려는 전세계적인 추세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이미 90년대 중반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첨단 기술과 정보화 사회, 경영 혁신 등으로 일자리가 급격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가 예견한 ‘노동의 종말’은 현실이 돼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의 양극화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인간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처럼 노동을 생산요소의 하나로만 이해한다면 지칠 줄 모르는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할 것인지 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2023년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소득이 낮아서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은 더 많이 일할 자유를 보장하고 과로사를 감수하며 일해야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일하고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정책을 만들고 사회 안전망을 더 확충해야 한다. 당장 더 많이 ‘노오력(노력할 것을 강조하는 표현)’하면 나중에 네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혼인 건수와 출산율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정부의 노동 정책에는 없어지는 일자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남아있는 일자리를 어떻게 나누고 새로운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사회 안전망은 어떤 식으로 확충해야 하는가,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즉흥적으로 내놓고 그마저도 갈팡질팡하는 정부, 언제까지 그저 ‘좋아, 빠르게 가’만 외칠 셈인가. 그런 정부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