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하나, 디스플레이 하나, 소형 냉장고 한 대, 책 몇 권, 미니어처 몇 개…. 15㎡ 남짓한 작은 공간마저 꽉 채우지 못했다. 왼쪽 벽에는 한 장의 함정 사진이 걸려 있다. 대한민국 해군 사상 가장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 초계함 ‘천안함’이다. 오는 26일 13주기를 맞는 그날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서울 남영동에 마련된 326호국보훈연구소의 모습은 이렇게 단출했다.
이 연구소 소장은 천안함을 지휘했던 최원일 전 함장이 설립한 곳이다. 이유는 분명하고 강렬했다. 천안함 생존자와 유가족을 지키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정부와 군, 단체 어디에서도 천안함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모두 일회성이죠. 결국 천안함 생존자와 유가족은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명예를 회복하는 것, 연구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천안함 생존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 설립 목적이라는 것은 연구소가 역설적으로 오래 지속하면 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음모론으로 공격 당하는 일 없이, 아버지가 패잔병이 아니라 영예로운 군인으로 인식될 때 연구소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 최 소장이 “연구소 문을 빨리 닫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천안함 폭침으로 승조원 104명 중 58명만 구조됐고 46명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생사는 달랐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특히 희생 장병과 생존자에게 ‘경계에 실패했다' ‘패잔병’이라고 비난할 때는 억장이 무너졌다. 최 소장은 “천안함 관련 댓글의 70%가 욕이고 부하들 다 죽여 놓고 너만 뻔뻔하게 왜 살아왔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며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이런 말들은 생존자와 유가족에 대한 2차, 3차 가해이며 어뢰를 쏜 북한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개탄했다.
폭침과 주위 비난으로 받는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 소장만 하더라도 오랜 시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2~3월만 되면 몸이 아프고 꿈속에서도 전사한 전우들이 나타나 견딜 수 없었던 탓이다. 현실 도피를 택한 승조원들도 있다. 그는 “생존자 중 2명은 견디다 못해 이름을 바꾸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아예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며 “세상의 시선이 싫어서 숨어 사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너무 걱정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방부에서 자신을 전투 준비 태만 등의 혐의로 형사 입건 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8개월 간 그렇게 죄인 아닌 죄인으로 있다 보니 자존심도 자긍심도 남을 리 없다. 너무 억울해 역소송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천안함의 취약성을 밝혀야 하는데 그건 우리 해군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의 역할은 주임무가 간첩선에 대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잠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며 “지금이야 신형 함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지만 당시에는 이런 취약성을 밝히는 것은 전우를 사지로 내모는 일이기에 나설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정치권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보수나 진보 어디든 마찬가지다. 그저 이용만 할 뿐 뭐 하나 제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서해 수호의 날’에 와서 사진 찍는 정치인은 많지만 단 한번이라도 생존자나 유족의 손을 잡는 이는 없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2010년 천안함이 폭침되고 8년 동안 보수가 집권을 했지만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최 소장은 “천안함 장병들은 전라도, 경상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온 청년들인데 어느 순간 갑자기 ‘경상도 배’가 돼 버렸다"며 “이제는 보수나 진보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돼 버린 듯 하다”고 지적했다.
‘말로 하는 호국보훈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꼬집은 최 소장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이야기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온 답변이 있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지킨 천안함 장병으로 기억을 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