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6일(현지 시간) '사법 개혁'에 반기를 든 국방부 장관을 하루 만에 해임하며 가뜩이나 최악으로 치달은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여당 소속 고위공직자 가운데 처음으로 공개적인 반대 입장을 밝힌 인물이 곧장 숙청되자 정계에서도 비판 여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내고 “네타냐후 총리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갈란트 장관이 TV 생중계 연설에서 ‘사법 정비’ 입법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말한 지 하루 만이다. 그는 여당인 리쿠드당 소속이지만 사법 개혁에 대한 군대 내 반발 여론이 격화하자 전날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갈란트 장관은 25일 연설에서 "현재 내가 목격하고 있는 강렬한 분노와 고통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며 "사회의 분열이 군 내부까지 퍼졌다. 이는 국가 안보에 즉각적이고 실재하는 위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달 들어 이스라엘 공군, 정찰 특수부대, 해군 등을 비롯한 예비군 수천 명은 집단적인 복무 거부 의지를 밝히며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 저항했으며 현역 군인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이는 상황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날 즉각 해임을 통보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가장 큰 해임 이유는 갈란트 장관이 훈련 및 복부 거부 선언을 한 예비군들에게 강경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갈란트 장관은 트위터에 “이스라엘의 안보는 내 인생의 목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소식통은 헤르츨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역시 복무 거부 예비군에 대한 온건 대응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다음 제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하이파, 베르셰바 등 이스라엘 곳곳에서 ‘독불장군식’ 인사 교체 소식에 반발해 기습 시위가 벌어졌다. 로이터통신은 26일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도로를 점거하고 불을 질렀으며 일부가 총리 관저 앞으로 몰려드는 등 시위가 격화하자 경찰은 진압과정에서 물대포까지 동원했다고 전했다.
성난 여론을 무시한 채 입법 독주가 이어지자 야권의 반발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시위가 격화하자 니르 바르카트 경제장관, 미키 조하르 문화부 장관 등 리쿠르당 소속 장관 3명이 정부 측에 사법개혁 중단을 제안했다. 같은 날 미국 뉴욕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인 아사프 자미르도 “나는 더 이상 이 정부를 대표할 수 없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야권 측 비판도 빗발치고 있다.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네타냐후는 갈란트를 해임할 수 있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연정의 광기에 저항하는 국민까지 해고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베니 간츠 전 국방부 장관과 공동 성명을 내고 “국가 안보는 정치 게임에 사용할 카드가 될 수 없다”며 “네타냐후는 오늘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 역시 "이스라엘은 '욤 키푸르 전쟁' 이후 커다란 위험에 처했다"며 "네타냐후 총리는 갈란트 장관 해임을 거두고, 개혁 입법을 중단하고, 독립기념일(5월 14일) 이후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27일에는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도 입법 절차 중단을 재차 촉구했다.
이 같은 정국 혼란은 이번 주 입법안에 대한 크네세트(의회)의 2·3차 투표를 앞두고 벌어졌다. 이에 로이터는 "해임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거센 항의와 연립 여당 내 분열 심화로 투표가 어떻게 진행될지, 혹은 진행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