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여명]美 통상 파고, ‘반도체 도련선’으로 넘어라

서정명 국제부 부장

美, 글로벌 공급망서 中 배제 '올인'

동맹국 압박에 삼성등 기업 대응 한계

韓·日·대만 '반도체 방패' 연합체 꾸려

尹, 한미 정상회담서 전략카드 활용을





미국이 중국 전국시대의 책략가 장의(張儀)를 소환했다. 글로벌 경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재빨리 따라오는 중국을 따돌려야 하는데 장의의 연횡(連橫) 전략이 ‘차이나 갈라 치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우방국이 포진한 유럽연합(EU)을 비롯해 한국·대만·일본·호주와 개별 협상이나 다자간 동맹으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미래 첨단 산업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치열한 생존 다툼을 벌였던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 등 6개국과 연합하거나 동맹을 맺어 천하를 통일했던 방식을 차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안보 구상과 통상 전략을 철저하게 이분화하고 있다. 북한의 핵 도발 위협과 중국의 국방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안보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동보조를 취한다.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 구호에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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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제·통상 분야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사상을 원용해 ‘1달러라도 벌 수 있다면 동맹국도 압박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서명한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들고나와 동맹국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조자룡 헌 칼 다루듯,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과 ‘손절’하고 미국 공급망에 들어오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전략산업이 밑동을 받치고 있는 한국 경제에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공장을 지을 때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면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늘릴 수 없다. 로직 반도체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D램 18㎚, 낸드플래시 128단보다 높은 수준의 반도체가 규제 대상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전체 출하량의 50%를 만들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 물량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는 차세대 공정 전환이 승패를 결정짓는데 이러한 규제 덩어리를 달고서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전기차와 배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K배터리 3사는 미국에 신규 공장을 짓고 있거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IRA 규제로 경영 환경이 불투명하다. K배터리의 경우 중국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가 높다.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쓰이는 수산화리튬은 90%에 달하고 코발트도 73%에 이른다. 이에 더해 EU는 ‘유럽판 IRA’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준비하고 있고 중국은 희토류 무기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원 부국인 남미와 동남아 국가들은 연합체를 구성해 리튬과 니켈 무기화를 꾀하고 있다.

고구마 줄기처럼 얽힌 이 같은 경제 난제는 통상 외교가 풀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반도체 도련선(island chain)’ 구축을 제안한다. 도련선은 1980년대 중국이 근해 방위 전략의 일환으로 태평양의 섬(島)을 사슬처럼 이은 가상의 선(線)이다. 도련선의 주축이 되는 한국과 일본·대만·필리핀 등은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받고 있는 만큼 지금은 미국의 방어선으로 인식된다. 메모리 절대 강자인 한국과 파운드리 글로벌 1위인 대만,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일본이 ‘반도체 실드(방패)’를 만들어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는 당당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17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12년간 중단된 셔틀외교를 정상화했다. 다음 달 26일에는 미국을 찾아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대만·일본은 물론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함께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개별 기업이 믿고 의지할 곳은 정부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통상 외교에 국운이 달려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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