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떡을 줘야 내가 떡을 준다는 식의 접근이 양국 관계에서 바람직한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일본에 잔뜩 퍼주기만 했을 뿐 받은 건 없다’는 지적에 이런 반응을 내놓았다. 일본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호응을 유도한다는 점을 이해해달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이 장관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게임 이론’을 끌어왔다. 그는 “국제 관계는 일회성 게임이 아니라 반복 게임”이라며 “신뢰를 기반으로 양국 간 이익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도 관계가 지속될 경우 상호 협력이 ‘창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로버트 액설로드의 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액설로드는 이를 ‘협력의 진화’로 이름 붙였다. 배반으로 취할 수 있는 이득보다 협력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장기적 이득이 더 크다면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은 ‘팃포탯(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다. 첫판에는 우선 협력하고 다음 판부터는 상대의 패를 그대로 따라 하는 전략이다. 자신의 선택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에 뒤통수를 치기보다는 손을 잡는 게 합리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빌드업도 마찬가지였다. 경색됐던 한일 관계를 ‘제3자 배상’이라는 협력의 제스처로 재설정할 때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기간 물컵의 남은 반을 채우기를 거부했고 방일 이후 우리가 화이트리스트 복원에 앞장섰지만 이에 상응하는 움직임은 아직이다. 떠보려는 듯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한국 측의 수출 관리 제도와 운용 상황의 실효성을 확실히 확인하고 싶다”고 뭉개고 있다.
액설로드의 실험에서는 배신을 눈감아주다가 ‘호구’로 전락한 ‘팃포투탯’도 등장한다. 한 번의 ‘잘못’을 용인했던 너그러운 팃포투탯의 말로는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사기꾼 ‘테스터’의 먹잇감이었다.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에 대한 우려도 여기에 있다. 자칫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을 수 있다. 김준현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순진하게 긍정 회로만 돌리다가 일본이 또다시 비수를 꺼낸다면 어떻게 할는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