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박수는 나의 힘, 다섯살 사막여우 임희정







“자…”하는 포토그래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알아서 착착 표정과 포즈를 바꿨다. 이내 “표정 좋고 포즈 좋고” 같은 만족스러운 반응이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전문 모델 못지않은 자연스러움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임희정도 벌써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5년 차다. 그냥 5년 차가 아니라 2년 연속 인기상을 받은 투어의 ‘얼굴’이다.



후반기에만 3승을 몰아친 폭풍 같았던 2019년 데뷔 시즌을 지나 우승 없는 한 시즌도 보내봤고 2021시즌엔 상금과 대상 포인트에서 모두 2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차가 반파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을 우승했다. 사고 두 달 만에 대회 최소타 기록인 19언더파 269타를 작성하며 무려 6타 차로 트로피를 들었다. 이룬 게 이미 많지만 이룰 게 더 많아 새 시즌이 설렌다는 ‘예쁜 사막여우' 임희정을 만났다.



어느새 5년 차다. 데뷔 전에 ‘5년 차의 내 모습은 이럴 것 같다’고 생각한 게 있었나.>>>

“‘5년 차엔 이러면 좋겠다’라고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은 건 없지만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단 생각은 꾸준히 해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이고. 아직 국내 무대에서 정상을 찍진 못했지만 그래도 골프 치시는 분들은 제 이름을 많이들 알고 계시는 것 같아서 어릴 때 생각했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신인 때와 비교해서 바뀐 것과,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근데 또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바뀐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근본적이고 원초적이랄까 골프에 대한 생각은 바뀐 게 없다. 세계 랭킹 1등을 하고 싶고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은 똑같다는 거다. 하지만 전엔 골프가 전부였다면 지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동반자라는 생각이다. 골프를 할 때와 안 할 때, ‘온 오프’를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겨울 훈련 성과는.>>>

“저만의 느낌을 많이 찾으려는 스타일이어서 레슨은 많이 받지 않는 편이었는데, 지난해 시행착오를 좀 겪으면서 저만의 루틴 정립이라든지 연습할 때 어떻게 비중을 두고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훈련을 통해서 골프장이나 연습장에서 지킬 루틴을 확실히 갖게 됐다. 컨디션이 좀 다르더라도 일정한 경기력을 보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작년에 부족하다고 느꼈던 2m 안쪽 쇼트 퍼트와 100m 이내 웨지 샷에 특히 공을 들였다. 구체적으로는 58도 웨지의 거리 컨트롤을 집중 연습했다. 파5 홀 공략을 좀 더 잘하면 안정적인 성적이 나올 걸로 봐서 그쪽으로도 연습했다.”

팬들 얘기를 해보자. 코로나19로 대회장에 관중 접근이 제한되던 때의 얘기다. 몇몇 팬들이 골프장 입구에 있었는데 희정 선수는 일부러 차를 멈추고 내려서 인사했다더라. 작년에 대회 직전 교통사고로 기권한 뒤에도 대회장을 찾아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팬을 대하는 이유가 있나.>>>

“팬분들이 먼저 저를 응원해주시고 많은 사랑을 주시기 때문이다.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라고 생각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하려는 거다. 경기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에서. 제 가치관의 반영이라고 봐도 좋다. 프로는 팬이 있어야 가치가 생기는 거 아닌가. 어머니도 강조하시는 부분이기도 하고. 사람이고 선수인지라 힘들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놓치지 않고 감사함을 표현하려고 한다.”

팬들이나 주변으로부터 들은 말 중에 가장 기억 남는 것은.>>>

“아무래도 ‘잘한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셔서. 아, 근데 깨달은 게 있다. 작년에 특히 몸이 많이 힘들다 보니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기가 있었다. 경기에 집중하기도 힘든데 팬분들 응원에 계속 답도 해드려야 한다는 데 대해서 ‘혼자 플레이하는 게 나을까’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는 걸 보고 금방 반성하게 됐다.”

주변에서 해주는 말 때문에 ‘아, 내가 이런 사람인가’ 알게 된 것도 있나.>>>

“계속 ‘귀엽다’ ‘귀엽다’ 해주시니까 가끔은 ‘진짜 귀엽나?’라고 스스로 돌아볼 때가 있다.”(웃음)



‘사막여우’ 별명 말고 ‘희돌이’ ‘돌희정’ 같은 별명도 있다. ‘돌’은 무슨 의미인가.>>>

“경기할 때 ‘돌부처 같다’ ‘멘탈 좋다’ 이런 평가들이 있는데 거기서 나왔다.”

골프 다음으로 나의 두 번째 재능은.>>>

“공감 능력.”

예를 들자면.>>>

“고민이나 고민 비슷한 얘길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프로가 되고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 내가 골프 말고 이런 쪽으로도 잘하는 게 있구나’ 느끼게 되는 게 있다. 근데 공감을 하되 굉장히 현실적으로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고민 상담의 대상은 투어 동료들인가.>>>

“아무래도 코스에서 경기하는 사이다 보니 친하긴 해도 그렇게까지 깊은 얘기를 하진 않는다. 학교 친구들이나 골프 외적인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 깊게 의견을 교환하는 편이다.”

클럽과 볼 브랜드를 다 바꿨다. 교체 이유는.>>>

“저한테 맞는 클럽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계속 변화를 줘왔다. 어차피 골프를 길게 보기 때문에 장비에 대한 시행착오를 초반에 해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올 시즌은 루키 때 좋은 플레이를 했던 그때 그 세팅으로 클럽과 볼을 쓰기로 했다. 그때의 감각을 느끼면서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 ‘이 클럽엔 이 볼이 맞다’는 제 나름의 기준이 있기에 볼도 예전 쓰던 브랜드로 돌아갔다.”

대회 중 하루 경기를 마치면 스크린골프장에까지 가서 더 연습을 하던데.>>>

“루키 때 많이 그랬다. 그땐 상위권 선수가 아니다 보니까 마지막 조나 그쯤에 자주 배정됐다. 그래서 경기 끝내면 대회장 연습장이 문을 닫으니 근처 스크린골프장 가서 스윙 점검하고 그랬던 거다. 요즘은 교정이 필요하다 싶으면 빈 스윙을 많이 하곤 한다.”

빈 스윙 연습은 어디서 어떻게 하나.>>>

“숙소 주차장에서 한다. 100~200개씩. 대회 중간에는 30~50개 정도만 한다. 그냥 하지 않고 구분 동작으로 꼼꼼하게 하면서 스윙에 필요한 근육 하나하나를 체크한다.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하는 빈 스윙도 효과적이다.”

시즌 중에 자신의 기록을 종종 확인할 텐데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그린적중률이나 그와 관련한 기록을 관심 있게 본다. 실질적으로 스코어와 연관이 깊고 제 샷 컨디션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인 것 같아서. 리커버리율도 꼼꼼히 본다. 플레이를 하다 보면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는데, 그래서 그린 미스를 했을 때도 얼마나 쇼트게임으로 잘 막았는지 그런 부분들을 주의 깊게 본다.”

투어 통산 5승을 비롯해 골프 하면서 올린 성적 중에서 돌아보면 스스로도 놀라는 성적은.>>>

“루키 때 올린 3승. ‘무관중 경기할 때도 아니었는데 그 많은 갤러리분들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한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어떻게 그렇게 한 건가.>>>

“갤러리가 많으면 저절로 몰입이 되는 것 같다. 코로나19 무관중 기간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몰입을 하려고 별도의 노력을 해야 했다. 갤러리가 많으면 그럴 필요 없이 자연스럽다.”


올 시즌 코스 안에서, 코스 밖에서 해보고 싶은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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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안에선 좀 더 여유로운 플레이를 하고 싶다. 물론 경기에 집중하는 게 좋지만 샷을 하지 않을 땐 편안한 표정으로 플레이하면 좋겠단 생각이다. 경기 외적으로는 팬분들과 소통을 늘리는 것, 그리고 대회장 근처 맛집을 발견해서 찾아가는 거라든지 ‘온 오프’를 빨리빨리 오가면서 리프레시하면 좋겠다.”

요즘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중계를 즐겨보는지.>>>

“요즘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를 즐겨본다. 2월에 아람코 사우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에 다녀왔다. 그때 같이 경기했던 선수들이 이후 참가한 LPGA 투어 대회를 유심히 보게 됐다. 제 플레이 스타일과 비교하면서 보면 도움이 된다. ‘나도 할 수 있겠다’ 또는 ‘나는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하는 생각도 하고.”

누구를 특히 눈여겨보나.>>>

“태국의 아타야 티띠꾼 선수. 요즘 워낙 잘하고 있기도 하고 더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래이기도 하다. (김)효주 언니도 많이 본다. 워낙 감각적으로 잘 치는 선수이기 때문에 컨디션 안 좋을 때 어떻게 치는지 많이 배운다.”

희정 선수는 예쁜 스윙으로도 유명하다. ‘어떻게 하면 예쁜 스윙을 할 수 있나’라고 묻는 여성 골퍼가 있다면 뭐라고 답하겠나.>>>

“팔꿈치를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스윙이 예뻐 보이려면 일단 팔꿈치가 벌어지면 안 된다. 각이 좀 더 잘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스윙이 예쁜 스윙일 텐데 그러려면 팔꿈치를 모아줘야 한다. 피니시 때 왼 팔꿈치가 벌어지는 분들이 많은데 90도를 유지한다는 생각이면 좋다.”

새 후원사와 함께한다. 데뷔 후 세 번째 후원사이기도 하다. 희정 선수에게 후원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선수로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한 시즌을 잘 꾸릴 수 있게 힘이 돼 주는 존재이고. 든든한 후원사는 선수의 자신감과 직결된다. 울타리 같은 거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 인터뷰에서 ‘은퇴해도 대회장을 지키겠다. 골프단 감독도 재밌을 것 같다’고 했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싶은 생각이긴 한데 은퇴 무렵이라면 오래 쳤으니 골프랑 좀 떨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어쨌든 힘 닿는 한 최대한 골프계에 남고 싶단 생각은 변함없다.”

‘할 수 있는 것’ 중에 지금 계획 중인 것이 있나.>>>

“여러 기업들과 컬래버레이션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사막여우라는 제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컬래버를 하면 골프 팬분들이나 제 팬분들이 좋아해주실 것 같다. 선수로서 하나의 캐릭터와 브랜드가 생긴다는 건 굉장히 좋은 것 같다.”

구체화되고 있는 프로젝트인가.>>>

“사막여우 캐릭터가 들어간 헤드 커버를 제작 중이다. 출시되면 감사했던 분들에게 선물 드릴 거다. ‘카카오톡 선물’을 통해 누구나 구매 가능하게 될 거다. 수익금은 기부 등 좋은 일에 쓸 생각이다.”



골프백에 쓰인 문구가 눈에 띈다.>>>

“그건 ‘Coraggio Avanti’.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란 뜻이다. 한 팬의 추천으로 가슴에 담았고 백에도 새기게 됐다. 플레이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되는 문구다.”

올해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출전 계획은.>>>

“작년에 몸이 안 좋아서 쉰 대회가 많았다. 올해는 국내 투어에 집중할 것 같다.”

LPGA 투어 진출 계획은.>>>

“가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는데 이게 참 시기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가게 되면 미국에서 은퇴를 하고 싶단 생각이다. 그래서 진출을 추진할 시기에 대해서 굉장히 신중해지는 것 같다. 아직 한국에서 정상을 찍진 못했기에 현재로서는 국내 투어에 집중할 생각이다.”

롤모델로 자주 꼽는 신지애 선배에게는 종종 조언을 구하는 편인가.>>>

“지난 겨울에 식사를 같이 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었다. 제가 걱정과 생각이 많은 성격인데 신지애 선배님은 ‘실패하더라도 그건 경험치가 되는 거니까 너무 많은 생각보다는 먼저 경험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힘든 시기가 있더라도 어차피 지나가는 거고 그래서 최대한 잘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도 새겨들었다.”

상금왕 같은 타이틀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성적에 비해 약간 상복이 없었더라. 올핸 인기상 말고 다른 상이나 타이틀을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한 해를 보냈다는 증명이 상금왕 아닌가. 상금왕 타이틀이 목표가 되고 욕심이 난다.”

가장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은.>>>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래퍼 이영지씨 나와서 게스트와 가볍게 한잔하며 토크하는 채널이다. 구독하는 채널은 굉장히 많지만 주로 알고리즘을 따라가는 편이다.”

취미를 물으면 뭐라고 답하나.>>>

“너무 많다. 요샌 학교 가는 게 재밌다. 학교에 취미를 들이고 있다. 교양수업 듣는 게 특히 재밌다. ‘몸의 미학’ ‘동양미술의 이해’ 재밌게 듣고 있다.”

비시즌 동안 가장 값진 경험은 무엇이었는지.>>>

“연말에 코로나19 걸린 거. 그래서 새해를 집에서 혼자 맞았다. 많이 아프진 않았고 가벼운 몸살 정도여서 다행이었다. 그 시기가 딱 적절했던 게, 당시 몸과 마음이 힘든 상태여서 강제로 쉬게 되니까 생각이 정리되고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하늘에서 주신 휴식기였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PROFILE

출생: 2000년 | KLPGA 투어 데뷔: 2019년 | 소속: 두산건설

주요 경력: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

2019 KLPGA 하이원리조트 오픈·올포유 레노마 챔피언십·KB금융 스타챔피언십 우승

2021 하이원리조트 오픈 우승, 2022 한국여자오픈 우승


양준호 기자 사진=유영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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