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미술 다시 보기]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카라바조는 17세기 유럽 화단을 지배했던 바로크 회화 양식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극단적인 명암 대비와 연극적 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창출된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강렬하고 극적이며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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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는 바로크 회화의 혁신성을 상징하는 위대한 화가였지만 그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평판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서양미술사에 기록된 수많은 예술가 중에서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작가는 드물다. 두 번에 걸쳐 살인 사건에 연루됐고 다양한 명목으로 투옥과 탈옥을 반복하던 그는 도피 생활을 전전하다 결국 38세의 나이에 길에서 객사했다. 그런 그가 도피처에서 제작한 그림이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다.

카라바조는 이 주제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렸다. 그중 로마의 보르게세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은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비드는 검은 어둠을 배경으로 피가 흐르는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서 있고 강한 스포트라이트가 이들의 두상에 투사되고 있다. 이때 다비드의 얼굴은 소년의 앳된 모습을 띠며 중년의 골리앗 얼굴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조 못지않게 두 인물의 나이 차이가 선명하게 부각되는 화면 구조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그림에 묘사된 두 인물에 카라바조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도피 중 정적의 습격을 받아 이마에 큰 상처가 나 있던 카라바조의 얼굴은 골리앗의 모습으로 구현됐고 연민의 눈길로 목이 잘린 골리앗을 바라보고 있는 다비드는 젊은 시절 카라바조의 모습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그림 속 장면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죽이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짙은 자기 환멸과 참회의 의지를 담고 있는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죄를 사면받고자 교황의 조카였던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을 위해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비극적 운명이 말해주듯이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 행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이 그림이 지닌 무게에 비장감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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