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000880)그룹의 대우조선해양(042660) 인수에 대해 해외 주요 경쟁 당국이 승인 결정을 내렸지만 정작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 구체적 결과를 발표할 시점조차 내놓지 못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위는 양사의 기업결합으로 영향을 받는 경쟁 업체와 수요 업체 모두 국내에 몰려 있어 경쟁제한 효과 등을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심사 장기화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공정위는 30일 “현재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주식 취득 건에 대해 이해관계자 및 관계 기관 의견 청취 등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방향이나 처리 시기 등이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해외 경쟁 당국이 잇따라 기업결합 승인 결정을 내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화가 기업결합을 신고한 8개국 중 튀르키예·영국은 2월, 일본·베트남·중국·싱가포르는 3월에 각각 승인을 완료했다. 다음 달 18일 심사 결과를 발표하는 유럽연합(EU)을 제외하면 한국 공정위의 결정만 남은 상태다.
공정위의 심사가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 존재하는 핵심 경쟁사와 수요사 때문이다. EU가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현 HD현대(267250))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불승인한 이유와 비슷하다. 당시 EU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양사 점유율이 60%에 육박해 독점 우려가 커진다고 봤다. 반대로 이번에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경쟁사가 되는 HD현대의 의견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조선 수요사인 머스크 등 글로벌 선사들이 지난해 EU의 불승인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이번에는 공정위가 국내 수요사의 의견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공정위는 동종 업계의 문제 제기에 따라 방위산업 시장의 경쟁제한 요인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산업을 주요 사업으로 삼은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기존 ‘군함용 무기·설비(한화)’에서 ‘함선(대우조선)’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군함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화가 다른 조선사와, 대우조선이 다른 방산 업체와 거래를 거부한다면 시장 경쟁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군함용 무기나 설비는 대부분 품목별로 1개 사가 독점 생산한다는 특성상 경쟁제한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공정위는 다른 대규모 기업결합 사건과 비교해서도 현재 심사가 늦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 결론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 1개월이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규모 기업결합 심사가 1~2개월 내에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내 심사 인력이 기업결합 사건 처리 건수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2017~2021년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건수는 연평균 823건이었지만 같은 기간 EU 경쟁총국의 심사 건수는 388건으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 관리 체제 하에서 대우조선의 저가 수주로 인한 조선 업계 출혈 경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화의 인수 작업이 조속히 마무리돼야 국내 전체 조선업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