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시론]고차원 방정식 된 에너지 안보

우종률 고려대 융합에너지공학과 교수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임박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9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국민 부담 최소화와 장기적 에너지 시스템의 공급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 고려해 4월 1일 전에 (인상)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는 이미 지난 겨울 전례 없는 전기·가스 요금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따뜻한 봄이 돼 난방 수요는 줄었지만 에너지 요금이 다시 오르면 충격은 여전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어 외부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로 에너지 자립을 이뤄 에너지 안보를 튼튼히 할 필요가 생겼다.



기후변화 문제는 심각하다. 그동안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왔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전 세계의 이상기후 뉴스는 감축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후 재난이 지금 당장 내 앞에 닥치지 않는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국제사회에서는 ‘RE100’이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강력한 규제들을 내놓고 있어 기업 경영을 위해서도 탄소중립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는 우리 앞에 한발 가까이 다가온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는데 필수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두 중심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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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에 주목하고 있다. 가스발전 비중이 높아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누구보다도 큰 타격을 받은 유럽은 탄소배출량이 적으면서도 전쟁과 같은 외부 요인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적은 발전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태양광·풍력과 원자력 발전은 저탄소 전력원이다. 이들의 탄소배출량은 석탄 발전의 100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 이들의 연료는 자연에너지와 우라늄으로 화석연료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원자력은 안정적으로 발전이 가능하고 발전단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는 좋은 러닝메이트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상향하면서 원자력 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켰다. 최근에는 원자력으로 생산한 수소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와 동등하게 저탄소 수소로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전력원을 지원할 정책과 제도가 잘 구축돼있을까. 먼저 재생에너지의 경우 최근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보급목표를 낮추면서 주춤하고 있지만 그래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력시스템 내에서 주류 발전원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환경성·경제성·안정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아직 재생에너지는 초기 단계라 경제성과 안정성 개선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의 양적 확대에만 치중하기보다는 변동성 높은 재생에너지를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전력시장 제도 개편, 송전망 확충,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 도입 등과 같은 과제들을 같이 해결해야 한다.

원자력은 유독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아왔다. 사실 원자력은 최근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해왔다. 원자력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중 30%를 담당하며 석탄 발전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판매단가는 석탄의 3분의 1, 액화천연가스(LNG)의 4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게 유지해 에너지 안보 위기 상황에서 탄소를 감축하고 전기요금 상승을 억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전력시장에서는 기여도에 걸맞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발전원별로 기여도를 정확히 평가해 전력 판매에 대한 수익을 합리적으로 책정해야 하지만, 원자력은 활약과는 달리 오히려 역대 최저 수준으로 수익을 정산받고 있다. 석탄발전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수익이 악화돼 선순환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차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 유지보수 등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해외 시장에서의 원자력 기술 경쟁력 하락뿐만 아니라 발전설비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운영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에너지 문제는 우리 사회의 경제·정치·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돼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 기술과 정책이 톱니바퀴처럼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갈 때 확보할 수 있다. 바닥부터 재점검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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