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달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중국과 말레이시아가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 창설을 논의하고 나섰다. 과도한 달러패권에 대한 신흥국의 불만이 커지고, 중국은 위안화 영토를 확장하는 가운데 나온 움직임이다.
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지난주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미국 달러와 IMF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필요성을 강조하며 아시안통화기금(AMF) 창설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나와 만난 자리에서 관련 논의를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안와르 총리의 발언은 현재 아시아에도 일본 주도의 아시아투자은행(ADB)이 있지만 별도로 AMF를 만들어 역내의 과도한 달러 의존도를 줄이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말레이시아 재무장관도 겸임하는 안와르 총리는 “말레이시아가 계속 달러에 의존할 이유는 없다”며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이미 중국과의 교역에서 링깃화와 위안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전세계 무역·금융 거래에서 달러화의 지위가 워낙 독보적이다보니 달러 가치의 변동에 따라 신흥국은 경제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가령 원유 등 대부분의 원자재가 미국 달러로 거래되는 상황에서 원자재의 절대가격이 변하지 않더라도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신흥국 화폐가치는 하락해 원자재 수입 비용이 올라간다. 이는 국내 수입 물가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세계 각국은 기축통화인 달러 위주로 외채를 보유할 수밖에 없는데, 역시 미국 달러가 강세를 나타내면 외채 상환 부담이 늘어나 국가 경제가 악영향을 받는다.
실제 미국의 지난 1년여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원자재, 식량의 해외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은 외환위기에 빠졌다. 말레이시아 역시 이 같은 달러 패권에 따른 피해를 절감한 것으로 해석된다.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창시한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달러가 세계 금융에서 너무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신흥국에 그들의 달러 의존 리스크를 줄이라고 조언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위안화 영토를 넓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전세계 무역·금융 거래에서 자국 통화가 많이 쓰인다면 그만큼 유무형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와르 총리는 “AMF 창설은 내가 1990년대 재무장관이었을 당시 제안했지만 당시 이목을 끌지 못했다”며 “하지만 중국과 일본, 그 외 국가 등의 경제가 강해진 지금은 이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AMF 창설을 고려해야 하고 그다음으로 (무역·금융 거래에서) 각 나라의 통화를 사용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