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총선이 약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의도의 시계는 아직도 지난해 대선에 머물러 있다. 민심을 향해야 할 정치권의 시선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 및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심기만을 바라보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에 대해 대선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라는 자조섞인 표현도 나온다. 여야 지도부도 중도층 공략보다는 ‘집토끼’ 잡기에 더욱 기대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도 ‘팬덤’을 앞세운 양극화 선거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윤 일색의 지도부를 꾸렸다. 강력한 당정 일체를 앞세워 총선 승리는 물론 정권 안정까지 도모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국민의힘 지도부는 ‘극우’ 속앓이를 하느라 민심도 윤심도 챙기지 못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둘러싼 논란에 지도부가 개입되면서다. 김재원 최고위원이 당분간 공개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논란이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이 쉽게 극우와 결별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들이 윤 대통령의 당선을 이끈 핵심 지지층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확장 못지않게 결집이 중요한 시기인 만큼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극우 지지층을 매정하게 내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분간은 이들과의 불편한 동거를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여전히 대선 경선 때부터 이어진 친명과 비명 간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부각될수록 ‘개딸(개혁의 딸)’로 대표되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이들은 문자 폭탄과 트럭 시위 등의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이 대표 ‘방탄’의 선봉에 서 있다.
이 대표를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점도 민주당을 더욱 팬덤으로 이끄는 요인 중 하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재가 넘쳐 났는데 지금은 이재명 외에는 인물이 없는 게 민주당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차기 원내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미 지도부의 ‘단일대오’ 기조를 바탕으로 세력화된 강성 지지층의 기세를 꺾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야가 팬덤 블랙홀에 빠지면서 정작 선거 결과를 좌우할 중도층의 민심은 정치권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의 중도층 외면과 양극단에 치중한 선거 캠페인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왜곡된 표심으로 당락이 결정될 경우 총선이 끝난 뒤에도 대결 정치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선거는 더 많은 중도층을 확보하는 이가 이기는 법인데 지도부의 시선은 팬덤에만 쏠려 있다”며 탄식했다.
팬덤 정치의 중심이 되는 거대 양당의 리더십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아직 30% 초반대에 머물고 있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언급량이 급격히 늘기도 했지만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분간 정치인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부각되는 ‘제3지대’ 또한 좀처럼 떠오르지 않고 있다. 제3지대의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국민의힘의 비윤이나 민주당의 비명이 제3지대로 뛰쳐나갈 게 아닌 만큼 과거 어느 때보다 제3지대가 협소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