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극재 업체들이 물량 공세로 가격을 낮추면서 국내 배터리 생태계가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계기로 음극재 국산화가 K배터리의 시급한 과제가 됐습니다.”
최근 만난 배터리 업계의 한 임원이 양극재와 함께 배터리 주요 소재인 음극재 시장을 중국이 완전히 장악할까 봐 우려스럽다고 하소연했다. 배터리 충전 속도와 수명을 결정하는 음극재는 흑연으로 구성되며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10~15%를 차지한다.
음극재 시장은 원재료부터 소재 생산까지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흑연의 중국산 비율은 70.4%에 달한다. 중국 업체가 전 세계 흑연 광산 45개 중 30개를 운영한다. 이를 바탕으로 BTR을 비롯한 중국 음극재 제조 기업 6곳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를 독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북미 시장을 선점한 K배터리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 음극재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양극재만 해도 LG화학·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 등 4곳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음극재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포스코퓨처엠만이 중국과 외로운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미 IRA와 유럽 핵심원자재법(CRMA)을 계기로 음극재의 국산화는 더욱 시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우려 국가’인 중국산 소재를 사용할 경우 전기차 보조금에서 배제되고 유럽연합(EU)에서는 흑연·니켈·리튬 등 주요 광물의 중국산 비중을 점차 낮출 계획이다. 중국에서 음극재를 조달해 유럽이나 미국에서 배터리 셀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이 탈(脫)중국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은 K배터리의 약한 고리인 음극재 분야를 육성할 ‘골든타임’이다. 다행히 음극재가 IRA 세부 지침에서 광물로 분류되면서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생산해도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우리 정부가 이를 기회로 삼아 국내 음극재 생산 규모를 확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마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