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이 난 것은 다 팔았고 이제 남은 건 소위 ‘물린’ 것밖에 없네요. 코스닥 레버리지와 게임 상장지수펀드(ETF) 등 한때 유행했던 상품에도 투자했는데 손실이 꽤 큽니다(웃음).”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개인 재테크는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금융투자의 대가답지 않게 이처럼 소탈하게 답했다. 증권·운용사에서 만 34년간 몸담은 베테랑도 항상 수익을 볼 수는 없었던 셈이다.
서 회장도 재테크에서는 일반 투자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최근 대세를 따르며 공모펀드보다는 거래가 쉬운 ETF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서 회장은 “프라이빗뱅커(PB) 등의 도움도 받아봤지만 마음대로 사고팔 수 없다 보니 답답하더라”고 전했다.
한국 자본시장의 대표로서 서 회장은 국민들의 퇴직연금 관리 전략에 깊은 고민의 흔적을 내비쳤다. 그는 “1%대 수익률로는 30년이 지나도 노후 자산을 못 모은다”며 매년 덩치를 키우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금융투자 업계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 2021년 기준으로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서 총 77.4%를 점유한 은행(50.6%)과 보험(26.8%) 업종의 연간 수익률은 고작 1%대였다.
반면 시장점유율이 21.3%에 불과했던 금융투자 업종의 수익률은 3.17%로 가장 높았다. 최근 당국이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금융회사 갈아타기를 쉽게 하려는 움직임도 증권사들에는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서 회장은 “원금 손실을 꺼려 예적금을 고수하는 투자자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다만 수익률이 낮은 은행·보험 상품에만 노후 대비를 맡길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금융투자 업계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안으로 ‘자산배분펀드’ 도입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자산배분이란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분산투자해 시장 변동성에 따른 등락 폭을 최소화하는 투자 전략이다. 국민연금도 이를 통해 최근 10년간 평균 4.7%의 수익률을 올렸다.
서 회장은 자산배분펀드를 업계 대표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최근 대형 운용사들과 논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잠정적인 상품 이름도 투자자들이 금융투자 시장에 첫발을 내딛게 하자는 의미에서 ‘디딤돌펀드’라고 붙였다. 그는 “민간 업체들에는 국내 자산 비중 30% 이상 유지와 같은 제약이 없는 만큼 국민연금 수익률을 2~3%포인트 웃도는 상품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회장은 취임 100일 동안 가장 보람을 느낀 성과로 기획재정부의 증권사 외국환 업무 확대 결정, 국회의 하이일드펀드(비우량채 45% 이상 포함) 과세특례법 통과 등을 꼽았다. 펀드 경쟁력 강화와 증권사 법인 지급 결제 도입, 금융투자소득세 제도 보완, 대체거래소(ATS) 출범 등 앞으로 남은 과제들도 차분히 추진하면 업계의 숙원들이 하나둘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 회장은 “회원사·정부·국회 등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일정이 밀리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업계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뛰면 좋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믿는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