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푸른 빛깔이었다.”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의 모습을 본 유리 가가린이 남긴 말이다. 옛 소련의 공군 장교였던 그는 1961년 4월 12일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 궤도를 1시간 48분 돌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328년 전인 1633년 4월 12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설파해 교회에 도전했다’는 죄목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됐던 점을 상기하면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가린의 성취는 인류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지만 옛 소련과 체제 경쟁을 하던 미국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가가린 사태’ 직후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했고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미국인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은 400억 달러를 쏟아부은 끝에 1969년 7월 20일 달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인류가 다시 한번 달을 향한 담대한 여정에 나서고 있다. 1972년 아폴로 17호가 다녀온 뒤 인간의 발길이 끊긴 달에 사람을 다시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이 선봉에 있다. 지난해 아르테미스 1호가 발사돼 25일간 달 궤도 비행을 마치고 귀환했는데 당시 인간이 아닌 마네킹을 태웠다. 이번에는 사람이 직접 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최근 아르테미스 2호에 탑승할 우주비행사 4명을 공개했는데 사상 처음으로 여성과 유색인종이 포함돼 화제를 모았다.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탑승자 후보군에 포함됐다가 최종 명단에서 빠진 한국계 의사 출신 조니 김 씨 소식이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김 씨는 샌디에이고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의과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응급실과 보스턴 브리검여성병원 등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다가 2020년 우주비행사 선발 프로그램에 지원해 16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비록 최종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주로 향했던 의사의 도전이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은 행보라는 생각에 남다르게 느껴졌다.
우리나라가 7대 우주 강국을 자부하고 5대 과학기술 강국 도약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대학 입시에서는 의대 선호가 공고해지는 추세다. 2020~2022학년도 수도권 사립 의대 9곳과 국립 의대 9곳의 정시 합격자 중 N수생 비율은 78.7%에 달한다.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에서는 최근 5년간 1000명이 넘는 학생이 중도 이탈했다. 상당수가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에는 40대 중반 22학번인 지방대 의대생의 사연이 화제였다. 서울 명문대 97학번인 그는 17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관두고 3수 끝에 의대에 합격했다.
전국 의대 정원은 약 3000명, 수능 응시생 중에서도 상위 1% 이내 수재만 갈 수 있다. 최고급 두뇌들이 인공지능(AI)·우주항공 등 첨단 기술을 외면한 채 ‘고소득’과 ‘안정성’을 좇아 의대로 몰리는 것이다. 하지만 신경외과·응급의학과 등은 외면해 정작 필수의료 현장에서는 의사가 태부족하다. ‘의대 블랙홀’의 병폐를 바로잡으려면 대학 입시 제도와 교육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한 로드맵 수립과 관련 예산 확대, 이공계 진로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등 나라 전체가 변해야 그나마 희망이 있다.
이스라엘 성장과 혁신의 주역인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은 회고록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에서 “거침없이 상상하라. 내일의 지식을 선점하라”며 ‘야성적 충동’을 주문했다. 페레스는 생전에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더 크고 더 담대한 꿈을 꾸지 않았던 것”이라고도 했다. 이 땅의 상위 1% 수재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혹여 작은 꿈에 스스로 갇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라의 귀한 인재들이 더 크고 더 담대한 꿈을 품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길을 여는 것은 결국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