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US 오픈 챔피언 맷 피츠패트릭(29·잉글랜드)은 ‘속사포’ 골퍼다. 동반 선수가 샷 할 때 이미 자신의 프리 샷 루틴(샷 하기 전 반복적으로 하는 동작)을 끝내 놓는다. 그래서 자신의 차례가 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샷을 한다. 피츠패트릭의 플레이 속도가 새삼 주목 받은 것은 패트릭 캔틀레이(미국)의 영향이다. 지난주 마스터스에서 캔틀레이와 관련해 슬로 플레이 이슈가 있었다. 아깝게 우승을 놓친 브룩스 켑카(미국)가 “앞 조 플레이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고 꼬집었는데 앞 조에는 캔틀레이가 있었다. 캔틀레이는 “우리 앞 조가 너무 느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지만 그는 평소에 느림보 플레이로 눈총 받던 선수다.
17일(한국 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파71)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RBC 헤리티지에서 속사포와 느림보가 만났다. 피츠패트릭이 선두, 캔틀레이가 1타 차 2위, 디펜딩 챔피언 조던 스피스(미국)가 2타 차 3위로 최종 라운드 챔피언 조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속사포의 승리. 캔틀레이는 그린과 물 사이 나무 기둥에 낀 공을 잘 빼내 보기로 막는 기술을 뽐냈지만 합계 16언더파 3위에 멈췄다. 피츠패트릭은 우승 상금 360만 달러(약 47억 원)를 가져갔다. 버디 4개(보기 1개)로 3타를 줄여 17언더파로 마친 뒤 스피스와 3차 연장 끝에 승리했다.
RBC 헤리티지는 PGA 투어가 지정한 총상금 2000만 달러의 특급 대회들 중 하나다. 마스터스 직후라 쉬는 게 보통인 톱 랭커들도 많이 나왔다. 마스터스 우승자인 세계 랭킹 1위 욘 람(스페인)은 11언더파 공동 15위로 마감했다.
피츠패트릭은 퍼트 라인을 볼 때 거미처럼 납작 엎드리는 동작으로도 유명하다. 미세한 경사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승부가 결정된 세 번째 연장에서는 엎드릴 필요도, 퍼트 라인을 신중하게 볼 필요도 없었다. 18번 홀(파4)에서 핀까지 186야드를 남기고 9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을 홀 30㎝에 붙였기 때문이다. 스피스의 먼 거리 버디 퍼트 실패 뒤 피츠패트릭은 톡 쳐 넣는 탭인 버디로 10개월 만의 PGA 투어 2승째를 달성했다. DP월드 투어 8승(US 오픈 포함)의 피츠패트릭은 지난주 마스터스는 공동 10위로 마쳤다.
대회 코스가 있는 힐턴헤드 아일랜드의 하버타운은 어릴 적 피츠패트릭의 가족 휴양지였다. 피츠패트릭은 “즐거운 기억이 있는 이곳에서 우승하는 게 늘 꿈이었다”며 감격해 했다. 이 골프 리조트의 상징은 빨강과 흰색 패턴이 눈길을 사로잡는 등대다. 피츠패트릭은 이 코스에 올 때마다 하버타운 등대를 본뜬 헤드 커버를 드라이버에 씌웠다. 올해 드디어 트로피와 헤드 커버를 각각 손에 들고 우승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날 5타나 줄여 공동 선두에 오른 스피스는 1차 연장에서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잘 친 버디 퍼트가 홀을 향해 똑바로 갔다. 하지만 홀 바로 앞에 있던 작은 경사의 영향으로 마지막에 살짝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리머니를 하려던 스피스는 그대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2차 연장 버디 퍼트도 미세한 차이로 들어가지 않았다. 투어 14승을 눈앞에서 놓친 스피스는 “지난해 우승 때보다 경기력이 훨씬 좋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준우승 상금은 약 28억 원. 우승 상금과 19억 원 차이다.
임성재는 4타를 줄여 13언더파 공동 7위에 올랐다. 시즌 다섯 번째 톱 10. 세계 2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12언더파 공동 1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