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기업의 인사관리(HR) 담당 임원은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직원이 비위 행위를 저지른 뒤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고 처분까지는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친분을 고려해 직원을 달래는 과정에서 꺼낸 말이었지만 그 결과는 뼈아팠다. 사내 인사위원회에서 최종 징계해고 처분을 받은 이 직원이 면담 내용을 몰래 녹취한 뒤 노동위원회에 제출해 결국 '징계가 과도하다'는 판단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최근 이른바 MZ세대의 등장 등에 따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HR 면담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가 18일 'HR 면담 대응 가이드'를 발표했다.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HR 담당 임직원이 면담을 진행하다 오히려 기업 리스크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게 대한상의의 지적이다.
상의가 제시한 면담원칙은 △비밀유지 △지위 남용 제한 △면담 특성 최적화 △관련 내규 및 법 숙지 등이다.
먼저 비밀유지 원칙은 피면담자와 회사의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수칙이다. 단순히 신뢰관계를 넘어 비밀유지 원칙이 깨지면 향후 면담자가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상의는 설명했다.
면담자의 지위 남용도 향후 기업 평판 리스크를 더 키울 수 있는 주의사항으로 지목됐다.
국내 A기업 인사담당자는 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 B씨와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가하면 합의금을 제시하고 언론사 제보 금지 서약까지 요구했다. 피해자 B씨는 이같은 부적절한 면담과 사측의 미흡한 조치로 사직한 뒤 고용부와 인권위원회에 이를 제소했고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A기업의 대외이미지가 더 크게 훼손됐다. HR 면담자의 지위 남용이 결과적으로 기업에 더 큰 손해를 끼친 셈이다.
실제 면담을 진행할 때 면담자가 명심하면 좋을 '팁'도 함께 제시됐다. 우선 면담에 앞서 피면담자에게 녹음행위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제시하고 동의없는 녹음은 음성권 침해 및 기밀유지위반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만약 면담자가 녹음을 할 경우에는 이런 사실을 사전 공지하고 녹음에 반대할 경우에는 조사면담 내용을 서면 정리해 서명을 받아야 한다.
비위사실 징계공고 시에도 명예훼손 위험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상의는 조언했다. 부득이하게 징계사실을 공고하더라도 익명으로 기재하고 비위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줘야 한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이번 가이드를 통해 기업 내 인사담당자들이 면담 때 법적 분쟁을 겪지 않도록 사전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