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자신들이 입주한 오피스텔이 대규모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임차인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전날 밤 법무사로부터 휴대폰 문자를 받고 왔다는 한 임차인들은 “어제 막 소식을 들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러 왔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 미추홀구에 이어 동탄신도시에서도 대규모 전세 사기 의심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전세 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임대인은 동탄·병점·수원 등에 오피스텔 250여 채를 소유한 부부로 알려졌다. 집값 하락으로 인천에서 시작된 대규모 전세 사기 리스크가 전국으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전세 사기가 의심되는 동탄신도시의 경우 피해자들만 입장할 수 있는 단체 채팅방에는 이날까지 138명이 모였다. 오피스텔 입주자들과 계약을 진행했던 중개업소는 3월 15일께 사장이 바뀌었다. 이를 인수 받은 사장 A 씨는 “상황을 모르는 채로 인수 받았는데 받고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서 “집주인이나 이전 사장과 연락할 이유도 없고 기사를 통해 어제 저녁에나 이런 상황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차인들은 법무사가 보낸 단체 문자를 통해 상황을 처음으로 인지했다고 입을 모았다. 문자에는 “임대인의 사정으로 인해 6월 10일까지 소유권 이전등기를 접수해야 국세 체납으로 인한 보증금의 순위가 보존되지 않는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임차인들 중에는 “문자를 받은 뒤 스팸인 줄 알았다”며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은 이들도 다수였다.
이날 오전 부동산 앞에서 만난 임차인 김 모(21) 씨는 “회사에서 출퇴근하려고 지난해 11월에 오피스텔을 계약했다”며 “특성화고를 졸업해 지난해 취업한 뒤 1년간 1800만 원을 모으고 중기청 대출 7200만 원을 받아 9000만 원짜리로 계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천 전세 사기 같은 일이 동탄에서도 터질 줄 몰랐다”며 “정부가 좀 더 일찍 대책을 내놓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동탄 일대에 250채를 보유한 집주인 부부는 기자가 방문한 부동산을 통해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진행했다.
또 다른 20대 세입자 B 씨는 “알려진 집주인과는 다른 사람이 실제 집주인이고 이 사람도 파산 절차에 들어간다고 한다”며 “오피스텔을 40채 정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등본을 떼보니 이미 해당 오피스텔은 압류돼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논란이 된 오피스텔 임대인의 의뢰를 받은 한 법무사 사무소 관계자는 임대인이 갖고 있는 오피스텔이 250여 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임차인들은 등기이전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지만 현재 시세로는 수천만 원을 손해볼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는 “임대인이 6월 15일부터 국세나 카드·비용 등이 체납될 것 같고 변제 능력이 없으니 공매든 경매든 진행하게 될 것 같다”며 “그 전에 개별적으로 정리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먼저 적극적으로 서류를 제출하겠다고 의뢰한 상태”라고 밝혔다. 임대인이 오피스텔을 취득한 시기는 2019~2020년께로 당시 동탄 지역은 갭투자 수요가 높았다.
인근의 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이미 인근 부동산을 팔아넘긴 부동산 업자들이 2~3곳 된다. 갭투자 물건을 많이 보유한 부동산 원주인들은 이미 다 팔고 사라진 상황”이라며 “매매가가 1억 5000만 원인데 전세가가 1억 6000만 원 수준이라 ‘역전세’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성동탄경찰서에는 이날까지 임대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처지에 몰렸다는 내용의 피해 신고가 53건 접수됐다. 해당 오피스텔 거주자 중 삼성전자 직원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도 내부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 직원 실태를 조사하는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2개월 새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숨지면서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구제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1부(백승주 부장검사)는 전세금을 명목으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70억 원이 넘는 현금을 가로챈 전세 자금 대출 조직 8명에 대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범죄집단죄를 적용했다. 검찰은 이들의 범행으로 인해 실제 전세자금이 필요한 서민들이 대출 기회를 빼앗긴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