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무역수지도 14개월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면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상수지도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세수가 줄어들면서 재정수지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대로 가면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에서는 올해 한국 경제가 역성장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경제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부터 제거해 줘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이 벤처 투자다. 경기 침체 여파로 최근 벤처 업계는 사정이 좋지 않다. 여기에 온갖 규제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 1·4분기 국내 벤처펀드 결성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8.6%나 줄었다. 정부는 앞으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등을 중심으로 민간 자금의 벤처 시장 유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정부가 공정거래법을 고쳐 2021년 12월부터 일반 기업의 지주회사도 중소기업 창업투자회사나 신기술사업 금융전문회사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CVC로의 자금 유입은 저조하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투자회사 신규 투자 규모는 6조7,640억원에 그쳤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되기 이전인 2021년(7조6,802억원)보다 11.9%가 줄었다. 정부가 모처럼 결단을 내려 금산분리의 족쇄를 일부 풀기는 했지만 생각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벤처 투자가 부진한 것은 규제와 관련이 있다. 물론 투자 감소가 전적으로 규제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규제는 기업들의 CVC 투자를 머뭇거리게 한다. 공정거래법상 CVC는 총자산의 20%를 초과하는 금액은 해외 기업에 투자할 수 없고 부채비율도 200%로 제한돼 있다, 펀드 내 외부자금 유치도 40%까지만 허용된다. 계열사나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는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준법감시인과 위험관리 책임자를 의무적으로 두게 하는 등 사전 규제도 수두룩하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일부 정부 부처는 금산분리 규제를 더 풀 경우 대기업에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얽히고설킨 규제를 놔두고 민간 기업의 벤처투자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윤석열 정부가 목표로 하는 5년 내 신규 기술창업 30만개 달성도 어려워진다.
미국 등 벤처 투자가 활발한 나라들은 기업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별도의 제약을 가하는 경우는 없다. 규모에 상관없이 기업의 행위가 법을 위반할 경우 제재를 가할 뿐이다. 구글과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창업투자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혁명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디지털 전환은 기업 생존의 필수요소가 됐다. 이런 혁신의 원천을 기업 내부에서만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기업들이 CVC 설립을 통해 외부에서 참신한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 나선 이유다. 정부가 민간 투자 확대를 통한 경기 회복을 바란다면 좀 더 과감하게 CVC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이를 통해 2000년대 초반과 같은 벤처 붐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리고 산업 구조조정을 이루는 길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