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견기업에서 행사 기획을 담당하는 A 씨는 요즘 부쩍 오른 호텔 대관료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올해는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로 지난해 비대면으로 대체하거나 규모를 축소해 진행했던 글로벌 세미나와 비즈니스 미팅 등을 재개해야 하는데 서울 시내 주요 호텔 대관비가 20~50% 오른 탓이다. A 씨는 “엔데믹과 함께 수요가 늘면 대관 비용이 오를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비용도 비용이지만 연회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일정 잡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덧붙였다.
엔데믹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방한이 다시 늘고 대규모 행사가 재개되면서 국내 주요 호텔의 연회·숙박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사실상 중단됐던 결혼식이나 글로벌 세미나 등 행사가 급증한 데다 나들이 철을 맞아 외국인·내국인의 발길이 몰리면서 주말이나 인기 시즌 대형 연회장 및 객실 예약은 이미 꽉 찬 상황이다.
21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2월 방한 외래 관광객은 47만 924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79.3%나 늘었다. 일본 관광객의 경우 무비자 입국 시행 및 항공편 증편으로 무려 3117.2% 뛰었다. 홍콩 관광객은 춘제 이후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5869.5%, 대만은 연휴(2월 25~28일) 효과로 5497.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한중 상호 단기비자 발급 재개(2월 18일)로 174% 늘었다. 아직 팬데믹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회복세는 가파르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중국인 비중이 낮아진 점도 눈에 띈다.
여러 국가에서 한국을 찾아오면서 한동안 썰렁했던 호텔은 로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연회장은 예약 잡기가 어려울 만큼 북적이고 있다. 지난해 위드 코로나와 맞물려 소규모 대면 행사나 온·오프라인 혼합형 행사가 많았다면 올해는 전체적으로 행사 규모가 커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우선 마이스 행사의 경우 호텔 업계에서는 ‘연회장과 식음업장, 객실 등 호텔 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행사’ 중 ‘객실 10박 이상’이 함께 예약된 경우를 통상 마이스 손님으로 구분하는데 서울 인터컨티넨탈코엑스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의 경우 올 1분기 기준 마이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증가했다. 호텔 관계자는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던 행사들이 다시 개최되면서 대형 공간의 경우 올해 예약이 사실상 끝났고 중소형 회의장 정도가 평일 중심으로 예약이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조선호텔은 5월 판촉 부서 직원들을 싱가포르·홍콩 등 동남아 지역으로 출장을 보내기로 했다. ‘비대면’ 제한으로 말라붙었던 각종 비즈니스 미팅과 행사가 활발해지면서 대규모 연회 유치를 위한 사전 작업에 나서기 위해서다. 조선호텔은 올 하반기부터 해외 마이스 물량이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준비를 진행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기업이나 특정 단체의 연회 외에 코로나로 줄줄이 밀렸던 예식 수요도 폭발한 상태다. 한 호텔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엔데믹과 맞물려 각종 행사 관련 문의가 많았다”며 “결혼식의 경우 코로나로 미뤄뒀던 커플들의 일정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최근 예식장도 많이 사라지는 추세이다 보니 이미 올해 일정은 예약이 다 찼고 내년도 4·5월 인기 시즌도 마감된 상태”라고 전했다.
개별 관광차 방한한 외국인의 투숙도 늘고 있다. 웨스틴조선서울의 3월 외국인 객실 비중은 76%로 전년 동월(25%) 대비 50%포인트 넘게 뛰었다. 한화호텔앤리조트 ‘더플라자’의 외국인 투숙객 비율도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56%포인트 뛰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에 이 호텔은 로비가 다시 해외 손님으로 북적이자 서울 인기 여행지를 돌아볼 수 있는 ‘고궁 투어’ 패키지를 올해 말까지 선보이기로 했다.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 경쟁도 막이 올랐다. 포시즌스호텔은 여름철 손님 끌기의 핵심 메뉴인 빙수를 일찌감치 공개하고 5월부터 판매하기로 했고 다른 호텔들도 5월 가정의 달 수요를 겨냥해 다양한 ‘키즈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