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반도체 경기 불황의 영향을 받아 6분기 만에 연구개발(R&D) 비용을 축소했다. 미국 마이크론과 램리서치 등 내로라하는 반도체 회사들의 R&D 비용 감축도 이어졌다. 반면 국내 반도체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꾸준한 R&D 투자 기조를 강조하며 다음 호황에 대비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TSMC는 2023년도 1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R&D 비용이 391억 5700만 대만달러(약 1조 7000억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TSMC의 R&D 비용은 지난해 4분기 대비 12.2%가 줄었다.
TSMC는 올 1월 열렸던 실적 설명회에서 “대만 정부의 정책 등으로 전년 대비 R&D 비용을 20% 늘린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1분기 R&D 지출은 당초 발표보다 더 낮아진 셈이다.
19일(현지 시간) 1분기 실적을 발표한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장비 회사 램리서치도 1~3월 4억 2945만 달러의 R&D 비용을 지출했다. 2020년 1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회사의 분기별 R&D 금액이 12분기 만에 감소했다. 지난달 1분기 실적을 발표한 미국의 메모리 제조사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론의 1분기(지난해 12월~2월) R&D 비용은 7억 8800만 달러로 직전 분기 대비 7.18%,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다.
글로벌 주요 반도체 회사들이 R&D 비용 증가에 소극적인 것은 업황 악화 때문이다. 정보기술(IT)의 전방 수요가 급락하면서 반도체 회사들도 실적을 방어하기 위해 비용 줄이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크론·램리서치 등은 R&D 지출 축소와 함께 고강도의 인력 감축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올초 램리서치는 전체 인력의 7%, 마이크론은 15%를 감원하면서 인건비 절감에 애쓰고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들의 R&D 축소 움직임 속에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R&D 지출을 줄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어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7일 잠정 실적을 발표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선언했다. 다만 회사는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R&D 투자 비중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00조 원이 넘는 풍부한 현금과 연구 설비로 다음 반도체 호황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난 4분기에 이어 1분기에도 영업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R&D를 강화하는 기조는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는 “시장 회복 시기와 상관없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 비용 절감, 체질 개선, 고객 만족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