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한일협력은 시대적 사명이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북핵·미국 주도 디커플링 공조 등

양국 외교·경제협력 필요성 커져

정상간 지속 소통으로 신뢰 구축

양국 국민들 교류도 더 확대돼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정상회담으로는 5년, 셔틀외교로는 12년 만의 일이다.



위안부, 강제징용,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북핵 위기, 미국 주도의 디커플링 공조 등 숱한 과제가 있다. 그동안 냉각됐던 양국 관계가 일괄 타결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냉랭했던 12년,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싸늘해진 관계를 하루아침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기대는 말았으면 한다. 너무 조급할 필요도 없다.

대중을 더 행복하게 한다는 체제 경쟁에서 시장 중시, 규모의 경제, 인센티브, 비교 우위 등 자본주의적 이점은 인정됐다. 문제는 빈부격차 극복과 자유주의·권위주의의 각축이다. 미국·중국·러시아·유럽연합(EU) 등 4개의 강대국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각자도생과 치열한 합종연횡이 진행되고 있다. 중동 정세도 심상찮다.

우리는 경제 통상 국가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 이상의 국가가 됐다. 시장이 쪼개지려 하고 북방 정책에 적신호가 켜졌다. 아찔하다. 언젠가는 갈등이 풀리고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인류 공멸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대전환기(paradigm shift)의 과도기에 처해 있다. 우리도 입장을 정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섰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외교 무대에서는 별의별 연출이 다 이뤄진다. 윤 대통령을 한층 띄워줬다. 외교란 결국은 실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 실익이 얼마나 보장됐을까.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지원법 등은 그대로다. 대기업들은 북미 지역에 투자하도록 권유받고 있다. 핵심 공장이 해외로 나갈수록 안보 위기를 우려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떠날 개연성도 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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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우리의 주요 8개국(G8) 회원 진입에 대한 논의가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 지원이 전제 조건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잃을 게 없다. 한일 양국이 협력하면 서구 일방주의를 완화시킬 수도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 때 일본은 독일과 함께 일방적으로 미국의 환율 인상 압력을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30년’이라 일컫는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병상련의 일본과 대미 공동 보조를 취할 필요도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중국은 막대한 시장을 무기로 일본·한국 기업의 운신의 폭을 좁혀온 바 있다.

일본은 대만과의 경제협력이 아주 깊다. 일본의 중국 교역 의존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01년부터 10%대로 높아졌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효과다. 10년 만인 2010년 이후 20%대가 됐다. 대만과의 교역도 꾸준히 늘려 6%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만 업체들을 중국 내 현지 접촉 창구로 활용해 우회 진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1인당 소득이 우리와 같아진 대만 경제 약진의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세밀하고 장기적인 포석을 깔고 있다. 우리도 이웃 일본과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일본 기업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활용도 가능한 측면이 있다. 당면한 성장률 정체, 저출산, 고령화, 국가부채 위기 해법도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을 참고해야 한다. 양국 협력은 시대적 사명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코로나 이후 일본을 찾는 관광객 3명 중 1명이 한국인이다. 죽창가만 부르고 있지 않다. 대등해졌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일본인들도 한국을 찾기 시작했다. 양국 국민들이 과거사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증거다.

전향적 자세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해 더 절실하다는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캠퍼스아시아’라는 학생 교류 제도가 있다. 한국을 찾는 일본 학생들이 줄어들었다. 한일 관계의 냉각이 가져온 폐해다. 정상화되고 더 확대돼야 한다.

이제 베이비붐 세대로 젊어진 정상 간의 지속적인 소통에 기대를 걸어본다. 신뢰가 구축돼야 난관 타결에 ‘베스트프렌드’가 돼 진정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 다 주축 세대가 순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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