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의 대유럽 투자액이 10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그린필드 투자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인수합병(M&A)형 투자 규모를 앞지르는 등 중국 자본에 대한 서방의 경계심이 커지며 투자 규모·방식 모두 변화하는 추세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학연구소(MERICS)와 시장조사기관 로디엄 그룹이 9일(현지 시간) 발표한 공동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유럽연합(EU)·영국에 대한 투자액은 79억 유로(약 11조 5403억 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2% 감소한 수준이자 2013년(77억 유로)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정점을 찍은 2016년과 비교하면 83% 가까이 급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 지출이 발생하기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도 제로코로나 정책 여파로 해외 투자 여건이 악화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가 간 긴장감이 고조되며 해외 투자 수요는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보고서는 미국-유럽-중국 간 경제 관계 균열의 여파로 지난해 유럽 내 투자 규모와 방식, 대상이 두드러지게 변화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그린필드(진출기업이 투자국에 생산시설을 직접 설립하는 방식) 투자액이 급성장해 유럽 FDI 총액의 57%를 차지했다. 과거 M&A (브라운필드, 진출기업이 현지 기업·시설을 인수 또는 합작하는 방식) 투자 규모가 전체 FDI 가운데 압도적 지분을 차지한 것과 달리 사상 처음으로 비율이 역전된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중국 전기자동차(EV) 배터리 기업들이 견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총투자액의 88%가 영국, 프랑스, 독일, 헝가리 등 4개국에 집중됐으며 투자 주체는 CATL, SVOLT에너지테크놀로지, 인비전AESC 등 대부분 EV 배터리 제조사들이었다. 이에 보고서는 "중국 기업들은 유럽의 전기차 공급망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면서 "유럽의 녹색 전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유럽이 안보 우려로 주요 인프라에 대한 중국 투자를 더욱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하며 투자 총액은 줄어든 한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외국 전기차 기업에 철퇴를 내린 미국보다는 뒤늦게 규제 문턱을 높인 결과 중국 EV 기업들의 러브콜이 빗발친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여전히 유럽은 미국에 비해 정치적으로 개방적인 편이라며 “유럽에서 처음부터 (사업) 운영을 시작하는 것은 중국 기업이 관세·운송 비용을 피하고 수출입 시 방해물이 될 수 있는 정치적 긴장 상태로부터 방어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