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의 경영난이 하청 업체로 확산되고 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한전이 전기공사 업체에 통상적으로 지급해온 수준보다 낮은 공사 대금을 지불해 하청 업체의 경영이 급속히 부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한전 일감이 급감한 상태에서 대금 지급도 여의치 않게 되면서 한전발(發) 위기가 한전 협력사의 연쇄 도산, 전력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11일 전력 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의 ‘품셈 후려치기’로 전기공사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품셈은 단위당 시공 능력을 표시한 것으로 한전이 하청을 맡긴 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할 때 산정 기준으로 쓰인다.
문제는 한전이 품셈을 대거 낮추면서 하청 업체의 경영난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한전은 작업자가 직접 전선주에 올라가 공사하는 ‘승주작업’을 금지시키고 고소작업차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한전은 전선주에 올라가지 않는 만큼 사고 가능성이 낮다며 저숙련자에게 적용되는 수준으로 품셈을 깎았고 하청 업체들은 여전히 사고 가능성 등을 이유로 인건비를 높게 책정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하청 업체 관계자는 “품셈 기준이 바뀌면서 월 공사 대금이 30% 이상 깎였다”며 “월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전이 송배전망 보수 공사까지 줄여 (우리 같은) 하청 업체 입장에서는 일감마저 메마르고 있다”며 “(한전이) 전기공사 업체들에 줄 대금을 제때 결제하지 못하는 사례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한전의 원가 이하 전기 공급을 지목했다. 한 협력 업체 임원은 “한전이 7분기 연속 적자를 내면서 하청 관리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며 “오죽하면 피해를 본 업체에서도 전기료를 올려야 한다는 말을 하겠느냐"고 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공사 협력 업체의 경영난이 악화되면 전력망 및 전기 안전 관련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