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액션 영화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감독 토마스 바긴스키)는 위기에 빠진 소니를 구해야 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만화잡지 ‘주간소년 점프’에 푹 빠졌던 전 세계 망가 팬들을 공략하는 실사 영화가 ‘세인트 세이야’이다. 미국에서 ‘나이츠 오브 더 조디악’(조디악 기사단)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세상을 파괴하려는 그리스 여신 아테나를 수호하기로 맹세한 기사들이 인류를 파괴하려는 올림포스의 강력한 신들에 맞서는 내용이다. 1985년 쿠루마다 마사미가 그린 동명 만화 ‘세인트 세이야’를 라이브 액션으로 각색했는데 원작 만화는 발간 이후 3500만부 이상이 판매됐고 1986년부터 1989년까지 TV와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었다.
지난 10일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에서 LA 프리미어를 개최한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에는 아라마 마켄유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코스모를 깨우는 페가수스 성투사 ‘세이야’로 등장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만찢남인 그인지라 원작과의 싱크로율은 만족할 만하다. 세상을 파괴하려는 그리스 여신 아테나의 환생 시에나 역은 매디슨 아이스먼이 출연하는데 만화 캐릭터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래도 세이야의 멘토 알만 키도역을 맡은 션 빈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그는 어렸을 때 항상 관심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와 일본 문화, 즉 애니메와 만화가 결합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슬럼가 격투장에서 싸우던 중 이상한 힘이 발현되는 걸 느낀 세이야에게 “시에나가 아테나의 환생이고, 네가 걔의 성투사가 될 운명”이라고 다가가는 알만 키도역에 설득력을 부여한 것도 션 빈이다.
이 영화가 스파이더맨처럼 소니픽처스의 글로벌 흥행력을 회복시킬지는 미지수다. 애니메와 망가, 게임 등 지적재산권(IP) 강국인 소니는 팬데믹으로 침체의 늪에 빠졌던 2021년 극장가에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을 배급해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지난해 브레드 피트 주연의 ‘불렛 트레인’ ‘언차티드’ 외에 이렇다 할 후속작을 없는 상황이다. 2023 시네마콘에서 공개된 소니 픽처스의 라인업 역시 화려하다고는 볼 수 없다. 107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애니메이션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 ‘크런치롤’의 수익성과 게임 스튜디오와의 합병 인수, 그리고 애플과의 파트너십 체결이 없었다면 2021년 19억4000만 달러에서 2022년 8억9400만 달러로 폭락한 기업 이윤을 회복 가능성에 물음표를 찍었을지 모른다. 미국극장주협회(NATO)가 주최하는 전 세계 극장 및 영화산업을 위한 박람회 시네마콘에서 소니 픽처스가 공개한 2023년 개봉작들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 ‘인시디어스: 더 레드 도어’ ‘그란 투리스모’ ‘고스트버스터즈 시퀄’ 마블 영화 ‘크레이븐 더 헌터’ 등이다. 동명의 비디오 게임과 카 레이싱을 소재로 한 소니의 야심작 ‘그란 투리스모’는 7월 개봉 예정으로 올랜도 블룸(대니 무어 역)이 강조한 “극장용으로 제작된 영화”다. 그러나, 소니 픽처스를 구하는 기사단은 역시 애플 오리지널 필름이 그 역할을 할 전망이다. 덴젤 워싱턴 주연의 액션 영화로 안톤 후쿠아 감독이 연출한 ‘이퀄라이저 3’와 호아킨 피닉스가 전설의 황제를 연기한 리들리 스캇 감독의 ‘나폴레옹’은 예고편만으로도 기대감이 생겼다.
게임과 만화 등의 IP를 활용한 영화의 흥행 여부는 동전의 양면 같다. 올 상반기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처럼 게임을 영화화하면 재미없다는 통념을 뒤집어야 한다. 영화는 수동적이고 게임은 능동적이라는 대극적 성향을 부수어 버리고 아이와 어른 모두가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어야 흥행에 성공한다. 세상을 구할 기사가 깨어나 소니 픽처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의 관객들이 답하리라./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HFPA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