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열린 연례 개발자 회의에서 업그레이드된 인공지능(AI) 챗봇 ‘바드’를 공개하면서 영어 외 처음으로 선택한 외국어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했다는 소식에 국내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일반 검색엔진 이용자들은 대체로 호기심과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플랫폼을 비롯한 정보기술(IT) 업계는 경계심과 위기감을 드러냈다. 전세계 사용인구가 8000만 명 정도에 불과하고,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도 부족한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신기술 수용의 최첨단을 달리는 매우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한국과 일본 시장에 (진출을) 확대하는 것은 큰 가치가 있다”는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은 AI 기술을 앞세워 두 나라에서 검색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러시아와 함께 구글이 검색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몇 안되는 나라다. 전세계 검색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하는 구글로서는 한국과 일본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반드시 정복해야 할 국가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구글의 한국 검색시장 점유율은 31%로, 네이버(62%)에 이어 2위다. 일본에서는 올 1분기 기준으로 야후가 53%로 1위, 구글이 40%로 2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1위 업체와 점유율 격차가 상당한 한국은 구글의 핵심 타깃이다.
오픈AI의 ‘챗GPT’가 공개되면서 촉발된 생성형 AI 기술 경쟁은 이미 검색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오픈AI와 동맹체제를 맺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검색엔진 ‘빙’에 챗GPT가 탑재되면서 사용자가 느는 추세다. MS·오픈AI 진영에 비해 기술적으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구글이 와신상담 끝에 반격에 나서면서 서치 플랫폼 시장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늦었어도 한국어에 강점을 지닌 모델을 선보여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기술 종속’과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가 크다. 네이버는 오는 7월 ‘하이퍼클로바X’를, 카카오는 ‘코GPT 2.0’을 하반기에 내놓을 예정이다.
글로벌 빅테크와 토종 플랫폼 업체들의 생성형 AI 개발 경쟁을 지켜보노라면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성형 AI를 개발하고 고도화하는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수 인재·학습 데이터 확보와 컴퓨팅 비용 등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미 MS로부터 100억 달러를 투자받은 오픈AI가 1000억 달러 투자 유치에 나선 이유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의 매출은 네카오의 30배가 넘는다. ‘국뽕’이라는 비아냥을 듣더라도 네카오를 응원하는 것은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토종 플랫폼 업체들이 기술 주권을 지켜내고 국내 산업 전반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도우미’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을 글로벌 빅테크에게 기대하기 힘들고 맡길 수도 없다.
‘알파고 쇼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를 불러올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토종 플랫폼 업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괴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규제 강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뉴스포털 편향·불공정성 대책과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과 같은 규제를 만지작거리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뿔모양을 바로잡겠다고 소를 죽이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졸면 죽는’ AI 전쟁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정치 리스크’에 움추리고 ‘규제 모래주머니’를 차고 글로벌 빅테크와 전투하라고 할 순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듯 자율규제를 통해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있는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자정·상생 노력을 강화하도록 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로 네카오와 LG·SK텔레콤 등 생성형 AI를 개발하고 있는 테크기업 CEO들을 불러 격려하고 지원을 약속한다면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