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일으킨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에 AI 반도체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전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현지 시간)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AI를 지원하는 자체 설계 반도체 2종을 공개했다. 알렉시스 비욜린 메타 인프라 담당 부사장은 "자체 반도체를 구축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성능 향상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도한 발열을 개선하기 위해 액체 냉각 등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한 칩은 적은 에너지로 하루 40억 개의 동영상을 처리하는 ‘MSVP(Meta Scalable Video Processor)’와 AI 관련 작업을 지원하는 ‘MTIA(Meta Training and Inference Accelerator)’다. 메타 측은 칩이 대만의 반도체 업체 TSMC에서 7나노미터 공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타가 자체 설계 칩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에 비해 생성 AI 분야가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자사의 AI 기술력과 투자를 강조하는 거란 분석이 나온다.
메타뿐 아니라 해외 빅테크 기업들도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달 블로그를 통해 4세대 AI 반도체인 ‘TPU v4’를 공개했다. TPU 프로젝트 책임자인 놈 주피는 “TPU 4세대는 기계학습 성능이 종전 3세대보다 10배 이상 뛰어나다”면서 “에너지 효율도 2~3배 높다”고 말했다. MS도 2019년부터 코드명 ‘아테나’라는 이름으로 AI 칩을 개발 중이라고 지난달 미국 IT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이 보도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CPU(중앙처리장치)나 GPU(그래픽처리장치)보다 전력을 적게 쓰는 고성능 AI 반도체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의 반도체 칩을 AI 모델과 서비스에 활용하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칩이 AI에 최적화돼 개발된 게 아닌 만큼 AI 반도체를 직접 만드려는 것이다. AI 반도체는 AI 연산에 최적화된 시스템 반도체 제품군을 통칭하는 것으로 NPU(신경망 처리장치)라고도 불린다.
한국 기업들도 협력체를 꾸리며 AI 반도체에 힘을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네이버는 지난해 12월 AI 반도체 솔루션 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실무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고 밝혔다. 리벨리온은 지난해 KT(030200)로부터 3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고 리벨리온에서 개발한 AI반도체 '아톰'은 KT에서 개발 중인 초거대 AI서비스 '믿음'에 탑재될 예정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글로벌 기업과 격차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대표 AI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들이 상용 제품을 내놓기엔 갈 길이 먼데 매출 없이 버텨야 하는 현실도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퓨리오사AI는 지난해 매출 3억 원, 영업손실 501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 영업손실 143억 원보다 적자 폭이 커졌다. 경상연구개발비가 2021년 97억 원에서 지난해 421억 원으로 증가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리벨리온의 경우 2021년 영업손실이 96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는 “AI 반도체 기업들이 적자를 보고 있지만 관련 투자를 지속해 규모를 키운다면 해외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