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주소 불분명’에 無변호인·인식 부족…방어권 ‘사각지대’ 놓인 지적장애인[안현덕 기자의 LawStory]

82.3%는 국선변호인…사선변호사는 10.9%에 불과

88명은 변호인 없는 1심…신병 확보되고 재개하지만

형소법 어긋난 위법…보조인 제도 활성화 등 대책 절실

수사·재판 등 과정서 수사기관·국선변호인도 인식 부족

신뢰인을 보조인 삼을 수 있지만 초동 수사 때는 안 돼

국선 변호인 경우, 혐의 유무보다는 양형 변론 치우쳐





지적장애를 지닌 피의자 10명 가운데 1명 가까이가 재판 때 변호인 조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지가 불분명해 국선 변호인 통지를 못 받는 등 사유가 있기는 하지만, 형사소송법상 규정된 변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장애인 지원 활동가들이 수사기관은 물론 국선변호인까지 지적장애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수사·재판 단계에서 지적 장애를 지닌 피의자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지적 장애인들이 누구나 평등해야 할 법적 심판대에서 자칫 방어권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어 진술조력인 제도 활성화 등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21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지적장애인 피고인의 형사사법 절차상 처우에 관한 연구(지적장애 피고인 형사사법 처우에 관한 연구) ’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심 선고를 받은 지적 장애 피의자(1291명) 가운데 1062명(82.3%)이 국선 변호인을 선임했다.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변호인(사선 변호인)에게 사건의 변호를 맡긴 건 전체의 10.9%(141명)에 불과했다.



특히 이들 지적장애 피의자 가운데 6.8%에 해당하는 88명은 주소지 불명 등 탓에 변호인 없이 1심 재판 과정이 진행됐다. 이들 지적장애 피의자의 거주가 일정치 못하는 등 주소가 불분명하다보니, 국선변호사 선정 통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이같은 경우에는 우편 등 공시송달(주소·연락처 불명으로 송달이 안 될 때 법원이 해당 서류를 법원 게시판 등에 게시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하고, 피고인 없이 선고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한다. 이후 경찰이 지적장애 피의자 신병을 확보해, 상소권 회복(확정 판결이 불복해 다시 재판 받는 것) 신청으로 재판이 재개될 수 있기는 하나 현행법상 변호권이 지켜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위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 제 33조 제1항 5호에는 ‘심신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의신되는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다면, 법원이 선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282조는에도 장애가 있다고 의심되거나, 나이·지능·교육 정도 등으로 권리보호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변호인 없이 (재판을) 개정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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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시청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시청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절도 등 범죄를 범하는 지적장애 피의자들은 가족에게 버려져 혼자 지내거나 일정한 직업도 없어 주거가 불명확한 사례가 있다”며 “혹시라도 법원으로부터 국선변호사 선정이나 재판 출석 등을 통보받더라도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피의자와 지적 장애라는 점에서 부모 등 주변 조력자가 없을 경우 국선변호인 선정은 물론 재판 개시까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 만큼 보완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박사는 이어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수사나 재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단체 전문가 등 조력자가 동석하는 보조인 제도도 수사가 어느 정도 진척된 때에 이뤄지면서 제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며 “해당 제도의 정착과 함께 지적장애 피의자가 신뢰관계인 등 조력자를 통해 진술이 올바로 기재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수사기관은 물론 국선변호인 등까지 지적 장애 피의자가 법적 판결에 앞서 접해야 할 이들의 장애 인식 부족도 문제로 제기된다. 장애인 지원 활동가들이 지적장애 피고인 형사사법 처우에 관한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제도는 있으나 인식 부족 탓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발달장애인법에서는 ‘법원·수사기관은 발달장애인과 신뢰관계가 있는 이를 보조인으로 삼을 수 있고, 본인이나 검사 등이 신청하면 동석하게 해야 한다(12조)’거나 ‘(검사와 경찰은) 발달장애인 전담을 지정해 특성 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을 조사·심문해야 한다(13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파출소 등 초동수사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피의자가 발달장애가 있는지 파악이 하지 못해 신뢰가 있는 보조인의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담수사관 제도가 있다고 하나, 여성·청소년계 등 부서를 제외하고는 인력이 많지 않고, 조사 전문성도 높지 않다는 점도 문제 요소로 꼽힌다. 또 국선변호인의 경우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재판에서도 혐의 유무가 아닌 양형 변론에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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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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