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바이오

[여명] 의사는 왜 자꾸 가운을 벗을까

<김정곤 바이오부장>

분열과 상처만 남긴 의료직역 갈등

기득권 지키는 영역 다툼으로 눈살

코로나 팬데믹 당시 조건 없는 헌신

국민 건강 최후의 보루로 돌아와야

김정곤 바이오부장김정곤 바이오부장




“사실 의사들이 좀 과하게 대응한 거죠.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들이 단독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라요. 심지어 현장에서는 의사가 부족해 필수의료 공백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고 있습니다.”(보건의료계 관계자 A 씨)

“간호법은 간호사들이 단독 개원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법이에요. 법안 개정이든 시행령 제정이든 단독 개원의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시간이 충분했는데 간호법이 통과될 때까지 손을 놓고 있던 정부 여당도 책임이 있습니다.”(보건의료계 관계자 B 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간호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하지만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 직역 간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의사들이 총파업 계획을 철회했지만 이번에는 간호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간호사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간호사들의 단체행동이 어떻게 확산될지 알 수 없다. 당장 간호사들이 ‘업무 외 의료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준법 투쟁을 계기로 필수의료 인력 부족 상황에서 진료 보조 간호사인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의 역할 문제가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민들의 의료 대란에 대한 불안감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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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계의 직역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건의료계의 직역 갈등 전선은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의사와 약사, 의사와 한의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까지 곳곳에 형성돼 있다. 특히 직역 갈등의 중심인 의사들의 집단행동 역사는 길다. 의사들은 집단 휴진과 단체행동 등을 포함해 세 차례 파업을 강행했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2014년 원격의료 반대,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반대 등이다. 세 번의 파업은 모두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모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간호법 갈등으로 불거진 이번 직역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 등 의료 단체는 간호법과 함께 ‘의료인 면허취소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반대했다.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다. 사실 간호법 갈등에는 의대 정원 확대 반대, 의료 수가 협상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간호사들 역시 지역사회 ‘돌봄’ 이슈와 간호사 처우 개선 문제를 연계하며 단체 행동으로 맞서고 있다. 의료 직역 간 힘겨루기의 본질은 결국 직역 영역 다툼으로 수렴된다.

의료 직역 간 갈등의 뿌리에는 오랜 기간 지속돼온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의 고착화된 상하 위계 서열 구조도 한몫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직역 간 분열과 함께 커다란 상처를 남긴 이유다. 사태가 표면적으로 해결되고 갈등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다시 반복될 수 있다.

특히 의사와 간호사의 갈등은 다른 의료 직역 갈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는 간호법 논쟁으로 촉발된 의료 직역 갈등을 멈춰야 한다. 의사들은 의료직에 입문할 때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간호사들은 간호학교 임상 실습을 나갈 때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헌신한다”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하지만 이번 의료 직역 갈등에서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없었다. 국민들의 눈에는 결국 의사와 간호사가 벌이는 밥그릇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보건의료 현장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국민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의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데 현장 의료진의 공이 가장 컸다. 이들의 조건 없는 헌신이 없었다면 엔데믹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팬데믹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의사와 간호사가 개개인이 아닌 보건의료 시스템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까닭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보건의료 시스템이 멈춰서는 안 된다.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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