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을 거부한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도 가해자가 반복해 전화를 한 것만으로도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부재중 전화도 피해자에게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일으켰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2021년 10월 A씨는 20년 넘게 알고 지낸 B씨에게 사업자금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내가 너를 어찌하는지 잘 봐라'라는 등의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20여차례 전송했다. 이후 B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차단한 사실을 알고, 지인의 휴대전화를 빌려 B씨에게 6차례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1, 2심 모두 A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하고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지만 스토킹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의 행위를 스토킹행위라고 본 반면, 항소심은 스토킹처벌법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전화 벨소리가 울렸더라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부재중 전화 문구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해 스토킹처벌법에서 정의한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쟁점은 피고인이 전화를 걸었지만 피해자가 받지 않아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남은 경우 스토킹처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를 스토킹 행위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뤄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전화를 받지는 않았지만 ‘피고인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원했다’는 내용의 정보가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나타났다면 스토킹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스토킹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져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전화를 시도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필요성도 크다"며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 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해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