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종교 지도자들에 이어 국제 원로 자문 그룹인 ‘디 엘더스(The Elders)’를 ‘깜짝’ 접견하고 북한 문제를 비롯한 국내외 현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강력한 국방력과 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해온 가운데 집권 2년 차를 맞이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서 종교 지도자 9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 세계에 걸쳐 오지에까지 우리 국민이 안 계신 곳이 없다”며 촘촘한 외교망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로써 나라를 지키고 대북 관계도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북한의) 선의에 기대지 않겠다”며 외교적으로 북한에 대해 수위 높은 압박을 가해왔다. 올 4월 방미에서는 미국의 핵 자산을 공동으로 기획·실행하는 ‘워싱턴 선언’을 했고 이달에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한미일 정상이 모여 북핵 공동 대응을 재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이날 북한 문제와 관련해 “외교적으로 풀겠다”는 한층 완화된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고위급 회담을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도 이에 맞춰 유화적인 발언을 하면서 대북 정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 것이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방한 중인 국제 원로 자문 그룹 ‘디 엘더스’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초대해 접견했다. 디 엘더스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세계 평화 및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2007년 7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창설한 그룹으로 국제사회 지도자급 원로 11명으로 구성됐다. 의장은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부의장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그라사 마셸 전 모잠비크 교육부 장관이다. 원로 그룹은 윤 대통령에게 군축 비확산 체제에 대한 북한의 도전과 주권 존중 원칙에 반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로 들며 국제사회의 단합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북핵 대응과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자유와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에 기반한 책임 외교와 기여 외교를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디 엘더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초청으로 오찬 행사를 가졌지만 윤 대통령을 접견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일정을 변경해 이들을 만나 국제 정세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취임 초기 비공개 회동을 통해 북한과 관련한 조언을 하던 반 전 총장을 이날 만난 것도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