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중산층 떠나는 민주당… 상식 따른 판단 못하면 백약이 무효” [청론직설]

◆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유럽 좌파 운동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투명성·정직성

불투명땐 중산층 끌어안지 못해 보수 기득권 못 이겨

무주공산 중산층 돌보는 정당이 총선, 대선 승리할 것

尹 대통령 레토릭 팀 만들고 중산층 지원 전력 다해야


더불어민주당이 온갖 사건에 연루돼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송영길 전 대표의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까지 불거졌다. 당내에서는 ‘조국 사태’보다 더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이 감지된다. 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은 이에 대해 “비위 관련 인사들이 걸핏하면 위법한 것은 없었다고 한다”며 “법을 따지기에 앞서 상식으로 판단하는 변화가 없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강조했다. 이 학장은 “유럽 좌파 운동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투명성과 정직성이었다”며 “그렇지 않으면 사실상 보수와 맞서 싸울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이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진국으로 갈수록 투명성과 정직성을 갖추지 않으면 확고한 정치 세력으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이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진국으로 갈수록 투명성과 정직성을 갖추지 않으면 확고한 정치 세력으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민주당이 자고 나면 사건에 휘말려 있다.

△민주당은 한때 자신들을 지지했던 지지층이 왜 이탈하는지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하나같이 “위법성이 없다”는 얘기를 앞세운다. 자신은 옛날부터 어렵게 운동했던 사람이니 좀 봐달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법을 따지기 전에 상식에 근거해 사과하고 대응하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정치 소비자는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과연 신뢰할 만하고 상식선에서 받아들여질 정치 상품인지 여부를 판단하기를 원한다. 유럽 좌파 운동에서도 투명성과 정직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다.

-유럽 좌파는 왜 투명성과 정직성을 중시하는가.

△그게 아니면 보수와 싸울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서민 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세력이 투명성과 정직성, 논리성과 합리성을 갖추지 않으면 중산층을 끌어들일 수 없다. 보수층에 맞서 싸우려면 중산층부터 확보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중산 부르주아 계층은 재산권을 중시하기 때문에 보수와 연합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진보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부패한 보수에 직면하거나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자유를 박탈당할 때다. 그런데 진보가 윤리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만에 하나 위법이 아니라고 해도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민주당에 대한 중산층의 지지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민심 이탈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관측인데.

△무엇보다 중산층이 민주당을 불신하고 있다. 중산층은 박근혜 정부 탄핵 때 보수에 실망해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로 돌아섰던 세력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기에 노동자 서민 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세력이 중산층과 연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그런데 종합부동산세, 임대사업자제도 취소, 최저임금 정책 등 오히려 중산층의 재산권을 공격하는 정책을 남발했다. 그러니 중산층이 민주당에서 떠나고 있다. 한마디로 함께 촛불을 들었는데 공격을 받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중산층이 왜 중요한가.

△중산 부르주아 계층은 민주주의의 주축이자 자본주의적 존재다. 이들은 교육과 재산권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합리주의와 상식을 존중한다. 우리나라가 성숙한 민주주의·자본주의를 하려면 교양 있고 재산을 보유한 중산 시민 계층의 확대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가 양극화하다 보니 정작 그들을 돌보겠다고 나서는 정당이 별로 없다.

-민주당의 위기는 이른바 ‘조국 사태’부터 시작됐다는 평가가 많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강남 진보가 아닌 강남 좌파의 대표 주자다. 강남에도 진보는 많다. 강남 진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런던정경대(LSE)를 세운 비어트리스 웨브다. 웨브는 중산 계층이었으나 계층을 뛰어넘는 사회적 양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주역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노동자 계층 스스로 개혁의 주인공이 되도록 도왔을 뿐이다. 조 교수는 본인이 주역으로 나섰고 자신과 자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너무 너그러웠다. 그러나 본인이 주도하려 하는 순간 급진적 강남 좌파가 되고 심지어 포퓰리스트적 리더가 된다. 이게 강남 좌파 지식인의 자화상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2030세대의 이탈이 계속되고 있는데.

△2030세대는 1987년 민주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경제적 자유화가 이뤄진 후 태어난 세대다. 더치페이가 가능한 세대다. 서로 존댓말을 쓰고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상당히 구분해 볼 줄 안다. 평양보다 뉴욕·도쿄가 더 친숙하다. 그래서 자신의 자유와 이익, 부모의 재산권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게 최상의 가치다. 그러다 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 야당이 더 철저하게 중도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노동당 대표가 내건 ‘뉴 레이버(new labor)’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내 투표에서 가중치를 많이 뒀던 노조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재산권 문제에서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지우거나 약화시켰다. 마거릿 대처 정부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던 시기에 중산층을 생각하는 정당으로 탈바꿈시켜 정권을 되찾은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시기인데 오히려 중산층과 선명성 경쟁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왜 이런 점을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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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선출 과정에 일반 당원들의 목소리보다 조직화한 소수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더 증폭돼 반영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강성 지도부가 국회의원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선거를 앞두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세계적인 문제다. 정치가 이념과 상관없이 이슈와 인물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정당과 의회의 기능이 약해서 발생한다. 정당과 의원들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 숙의하고 일부는 양보해 결정해야 하는데 지지자들의 의견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여론조사를 앞세워 빠져나갈 핑계를 찾고 있다. 이런 경향은 냉전 체제가 붕괴된 후 이념에 대한 의식이 약화하면서 심해졌다.

-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바탕으로 입법 독주를 벌이고 있는데.

△입법 폭주는 분명히 잘못됐다. 하지만 민주당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준 국민의힘의 책임도 강조돼야 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뒤에 숨어 혁신도 안 하고 청년을 끌어안지도 않는다. 중산층이 민주당을 떠나고 있지만 국민의힘으로 가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내년 4월 총선도 걱정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이 개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산층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상속세·증여세 완화 등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부의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중산층은 지금 무주공산이다. 중산층에게 어필하는 정책과 태도를 보여주는 정당이 앞으로 총선·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정치가 왜 이런 큰 것을 못 보고 있는지 안타깝다.

-중산층을 육성하는 정책이 국가 발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전 세계가 양극화하면서 중산층이 엷어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으로 좋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이념 양극화가 우려된다. 타인에 대한 존중을 일컫는 시민성(civility)과 교양을 갖춘 중산층이 자리 잡아야 신뢰가 쌓이고 민주주의도 발전한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5000달러에서 4만 달러, 5만 달러로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치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하는데 한국 정치에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지역주의·감성주의가 약화하고 계층 의식이 강화된다. 불평등 이슈 등이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수와 진보 정당 체제로 간다. 우리도 이런 단계를 밟고 있다고 본다. 국가가 발전하는 초기 단계에는 마르크시즘이라든가 중상주의 같은 것이 지배적으로 퍼진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경제중심주의로 변한다. 유권자가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켜줄 정당이나 후보를 찾는 데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어떤 개혁이 필요한가.

△제도보다 사람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가 고등 인재는 많은데 이들에게 시민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교양을 갖춘 개인과 시민 없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시민성이 중요한데 정치인들이 이를 먼저 어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

△윤 대통령의 좋은 의도가 정치적으로 잘 소화될 수 있도록 레토릭(수사)을 구사하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가장 큰 약점은 정치적 레토릭이 약하다는 점이다. 범죄자에게 구형하는 검사의 레토릭과 유권자를 대하는 정치인의 레토릭은 다르다. 유권자의 반응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상대를 존중하는 발언을 해야 하고 간접화법을 많이 써야 한다. 계산되고 정교한 행동을 해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중산층위원회도 만들어 중산층 중심의 경제모델, 중산층 중심의 민주주의 모델 등을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무조건적인 포퓰리스트적 압력을 극복할 수 있다.

He is…

196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워릭대 ESRC 펠로로 강의하다 연세대 정외과에서 교편을 잡았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연세-SERI EU센터 소장, 대외협력처장을 거쳐 연세-EU 장모네센터 소장, 사회과학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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