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박결이 말하는, 결이 다른 박결





‘9년 차 박결’이라고 하면 어딘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변함없는 외모로 신예 때와 다름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다 굴곡이 잘 드러나지 않는 꾸준한 성적으로 물 흐르듯 투어를 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박결은 세월의 흐름과 쌓여가는 경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안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있다. 한결 같은 박결로, 또 한편으로는 다른 결의 박결로 2023년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




올 시즌 흐름이 아주 좋다(상금 랭킹 16위). 예상한 흐름인지.>>>

“예상은 못했지만 미국에서 겨울 훈련을 하는 동안 정말 열심히 하긴 했다. 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이 바탕이 됐다고 봐도 좋다. 훈련 성과가 이렇게 빨리 나오기 시작할 줄은 몰랐다.”

‘다른 마음가짐’이라면?>>>

“예전엔 이런 마음가짐이 강했던 것 같다. ‘연습을 보통으로만 해도 중간은 하는 선수인가 보다’라는. 근데 시드전을 한 번 갔다 오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하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확 느꼈다. 겨울 훈련 동안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이런 마음으로 해나갔다.”

(2021시즌이었다. 박결은 데뷔 후 처음으로 상금 60위 밖(69위)으로 밀려 시드전에 끌려갔다. 11월 시드전에서 첫날 86위로 처졌고 3라운드까지도 36위로 불안했는데 마지막 4라운드에 버디만 4개를 잡는 뒷심을 발휘해 최종 27위로 마치면서 시드를 유지했다.)

시드전 치르는 동안 감정은 어땠나. 시드전 수석으로 정규 투어에 데뷔한 경험이 있으니 생각보다 편안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

“편하진 않았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2부 투어를 뛰면 되지만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이어서…. 떨어지면 골프를 그만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솔직히 했었다.”

올 시즌 드라이버 샷 거리 증가가 눈에 띈다. 250야드는 어렵지 않게 보내는 수준이 됐다고 봐도 될까.>>>

“이게 좀 애매하다. 꾸준하게 보낼 수 있으면 ‘저도 250야드를 칠 수 있는 선수가 됐다’고 말할 텐데 그 정도는 아니다. 정말 잘 맞을 땐 250야드를 거뜬히 넘기는데 계속 그렇게 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쨌든 늘긴 늘었다.”

(박결은 늘 페어웨이 안착률 1위를 다툴 만큼 정확한 드라이버 샷을 가졌지만 220~230야드에 머무는 거리가 스트레스였다. 올 시즌은 250야드 넘는 ‘장타’를 심심찮게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놀랍다. 운동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그 덕분인가.>>>

“겨울 훈련 때 골프 쪽 전문이 아니라 일반인 대상 트레이너분과 운동했다. 일반 사람들 근육 키우기를 돕는 게 전문인 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잔 근육보다 큰 근육이 확실히 커지고 파워가 생겼다. 가벼운 샤프트로, 또 무거운 헤드로 번갈아가면서 100% 이상의 힘으로 빈 스윙하는 훈련도 되게 많이 했다.”

거리 늘리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본 셈 같다.>>>

“근력 키우는 운동, 스피드 내는 운동, 순발력 훈련까지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듯하다. 거리 증가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시즌 초·중반에라도 나와줘서 다행이다.”

어느덧 9년 차다. 신인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건 무엇인가.>>>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욕심이 크지 않다는 것. 승리욕이 없진 않지만 ‘우승을 못하면 진짜 죽을 것 같다’ 이런 마인드가 아닌 건 루키 때나 지금이나 같다. ‘2등을 해도 만족하고 행복한 삶일 수 있고 그래서 꼭 우승이 다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하는 편이다.”

달라진 것은?>>>

“신인 땐 그저 투어 프로가 돼서 좋다는 마음이었고 또 성적도 중간은 가는 것 같고 해서 솔직히 그렇게 막 열심히 하진 않은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올라오는 루키 후배들도 정말 많고 다들 잘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잘 치지 않으면 이 세계에선 버티고 살아남을 수가 없단 걸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무게 드는 운동은커녕 스트레칭조차 아예 안 하는 선수였는데 지금은 시즌 중에도 운동과 스트레칭을 꽤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환경의 변화는 어떤가.>>>

“상금이 되게 많이 올랐다. 시즌 상금으로 1억 원 넘기면 시드 유지는 확실했는데 요즘은 그 기준이 1억 5000만~1억 6000만 원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8~9년 전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코스 길이. 선수들도 장타는 기본으로 갖추고 올라온다.”



활동 기간이 9년이니 이른바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을 텐데.>>>

“2019년 어떤 대회의 2라운드였을 거다. 허다빈 선수와 같은 조로 치고 있었는데 파5 홀에서 티샷한 볼이 저랑 거의 똑같은 곳으로 갔다. 근데 둘 다 자기 볼이라는 확신이 섰는지 확인도 안 하고 두 번째 샷을 친 거다. 이번엔 각각 반대 방향으로 샷이 날아갔다. 가봤더니 제 볼이 아니더라. 둘 다 2벌타를 받았지만 다행히 워낙 잘 치고 있었던 터라 나란히 무난하게 컷 통과했다. 어쨌든 볼 확인은 늘 잘해야 한다.”

‘우산 사건’도 있지 않았나. 퍼트할 때 캐디가 우산 씌워줬다는 이유로 페널티 받았던.(선수가 스트로크할 때 비바람으로부터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으면 룰 위반이다.)>>>

“좀 억울한 면이 있었다. 나중에 중계를 봤는데 씌워줬다고 보기에는 뚜렷하지 않은 동작이었고 너무 짧은 순간이기도 하더라. 그 2벌타 때문에 결국 컷 탈락했고 그 대회부터 다시 성적이 곤두박질쳐 시드전까지 가게 됐다. 정말 운이 없는 해였다.”

가장 좋아하는 클럽은 뭔가.>>>

“9번 아이언이랑 48도 웨지. 이 두 클럽으로 풀 스윙 샷 하는 걸 좋아한다. 핀에 붙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9번 아이언으론 어느 정도 거리를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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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날아간 거리)로 113m 정도. 스핀 양은 좀 떨어져도 멀리 가는 클럽을 쓰고 있다.”

2021시즌에 골프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다고. 그럼 어떤 다른 일을 생각했었는지 궁금하다.>>>

“당시 진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을 못 냈다. ‘우선 시드전을 죽을힘을 다해 한 번 쳐보자’가 결론이었다. 주변에선 방송 이야기를 했었고 아빠도 ‘스피치 학원 가서 배우고 방송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저는 정말 그런 쪽으론 자신이 없다. 레슨도 잘 못하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

“골프를 시작하지 않은 아이 때로 갈 것이다. 물론 지금의 직업에 만족하고 감사하지만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다시 하고 싶진 않다. 아, 우승했던 그때로 돌아가고도 싶다. 우승 뒤로는 하락세를 맞았으니까 돌아가면 그 내림세를 오름세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녀 골퍼’라는 수식이 거의 고정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OO 골퍼’?>>>

“이것도 답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음, 스스로 생각하면 맹하고 친한 사람들로부터 ‘허당’기가 있단 말도 자주 듣는다. 처음 뵙는 분들은 대부분 말도 없고 차가울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라운드가 진행되고 시간이 흐르면 털털하고 잘 웃고 말도 많다고 말해주신다.”

맹하고 허당이면 주로 어떤 면에서 드러나나.>>>

“항상 뭐 하나를 흘리고 다닌다. 휴대폰과 지갑 놓고 다니는 건 특히 어릴 때 심한 수준이었다. 부모님한테 엄청 혼났다. 근데 역시 혼나니까 고쳐지는 건지 지금은 좀 덜하다.”



동생 이름은 ‘상은’인데 왜 박결 선수만 외자에 독특한 이름인 건가.>>>

“‘바람결’ ‘물결’할 때의 ‘결’이다. 어딘가에서 받아온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데 문제는 할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저는 박결이 아니라 박수연이었다. 박수연으로 거의 8년을 살다가 학교 들어갈 땐 반드시 등본상의 이름이어야 한다고 해서 박결로 돌아간 거다. 요즘도 친척분들은 저희 엄마한테 ‘수연이 엄마’라고 한다.”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이 정도까지 먹었다 하는 ‘먹부심’을 좀 들려준다면.>>>

“고기 중에서도 스테이크를 심하게 좋아했다. 점심에 스테이크, 저녁도 스테이크인 적도 있었고 혼자 앉은 자리에서 1㎏까지도 먹어봤다. 지금은 삼겹살을 조금 더 좋아한다.”

탄산음료 안 마시기, 밀가루 음식 섭취 줄이기처럼 음식과 관련한 절제를 실천해본 적 있나.>>>

“없다. 먹고 싶은 건 다 먹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선수였다. 언제부터 시작한 거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매력은 무엇인가.>>>

“2021년부터일 거다. 후원을 받는 입장에서 스폰서들을 알리는 의무도 있는 거니까. 또 해보니까 잘 나온 사진을 올리면 거기에 붙는 ‘좋아요’에서 느끼는 재미도 있더라. 근데 많이 들여다보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유튜브도 특정 채널 구독보다는 알고리즘을 따르는 편이다. ‘먹방’도 보고 코믹한 콘텐츠도 보고.”

‘이것만은 꼭 지킨다’ 하는 생활 습관은?>>>

“기독교인인데 그동안은 좀 소홀했던 잠들기 전 기도를 올 시즌은 꼭 지키고 있다.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조심해야 할 것들을 꼭 지키게 해주세요’라는 게 주된 기도다. 미국 겨울 훈련 동안 우연히 다닌 현지 한인 교회의 목사님 말씀이 정말 와 닿았는데 그게 계기가 됐다.”

골프장 안팎에서 스스로에게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나.>>>

“주변에서 ‘착한 언니’ ‘착한 동생’이라고 다들 얘기하는데 스스로는 고민이 많다. 실제로 착하게 살려는 나름의 노력들을 해왔는데 이게 ‘내가 착한 척을 하는 건가’하는 의문이 드는가 하면 ‘맨날 착하게만 보이니까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건가’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8년 전은 패기 넘치는 신인이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8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있지 않을까. 투어를 다니면 좋은 점이 많지만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적고 거의 매일 이동하는 삶일 수밖에 없다. 대회 나가면 매일이 수능 보는 느낌이고…. 그러다 보니 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짐 싸는 건 여행 갈 때만 하는, 그런 평범한 삶을 바라게 되는 것 같다. 레슨엔 소질이 없어서 투어를 뛰지 않으면 골프에서는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PROFILE

출생: 1996년 | 정규 투어 데뷔: 2015년 | 소속: 두산건설

주요 경력: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단체전 은메달, KLPGA 정규 투어 시드전 1위

2015년 NH투자증권 챔피언십·하이트진로 챔피언십 2위

2018년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우승

2023년 크리스에프앤씨 제45회 KLPGA 챔피언십 2위


양준호 기자 사진=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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