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정찰풍선 문제 이후 갈등의 골이 깊어진 미국과 중국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날 선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동시에 고위급 정부 인사들의 회담을 추진하며 대화의 끈을 놓지는 않으려는 모양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는 제20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기조연설에서 리상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은 “일부 국가가 군사기지를 확장하고 지역 내 군비 경쟁을 심화하고 있다”며 사실상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비판했다.
리 부장은 특히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지키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의 한 노랫말처럼 친구가 온다면 좋은 술로 환영하겠지만 늑대가 오면 총으로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 부장의 이런 발언은 전날 같은 행사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대만해협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을 비판한 데 대한 대응이다. 오스틴 장관은 “모든 국가는 합법적인 해상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남중국해역 등에 군함을 파견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대만해협에서의 충돌은 치명적일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틴 장관의 이 같은 발언 이후 미 해군은 미국 유도미사일 구축함과 캐나다 호위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리 부장의 연설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얼마나 소원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두 장관의 회담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미국이 리 부장에 대해 걸어놓은 제재를 푸는 데 난색을 표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오스틴 장관은 중국 대신 일본·호주의 국방장관과 회담했으며 “국제법과 부합하지 않는 중국의 주장과 행동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다.
양측의 대화 시도는 지속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동아태차관보가 4일(현지 시간)부터 10일까지 중국과 뉴질랜드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세라 베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대만 담당 선임국장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해 양자 관계 현안을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