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꽃자리 한때처럼

정경진





길가에 뜬금없이 떨어진



껍데기뿐인 검은 비닐봉지 하나

풋풋풋 달겨드는 웃음 채곡채곡 담아

웅비하는 새처럼

푸하하 날갯짓하며 날아오른다

전신주에 걸릴 듯

꽃나무에 사뿐 내려앉을 듯

몇 굽이 세상살이 넘고 넘다



달아나는 배꼽 움켜쥐고 나 살려라

관련기사



떼구르르 굴렁쇠처럼 마구 뒹군다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길 모퉁이에

후줄그레 남겨질지도 모르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

꽃자리 한때처럼 지금

무슨 꿈 꾸며 뒹굴고 있는지

한동안 바라보며

바람 부는 벌판에 나는 서 있다

껍데기뿐이라서 좋다. 무거운 감자며, 당근이며, 양파를 가득 담고 찢어질 듯 견뎌온 골목들. 속을 다 쏟아주고 나니 미풍 기다릴 것 없이 제 날숨에도 날아오른다. 채우니 짐이요, 비우니 춤이다. 전신주에 걸린들, 꽃나무에 앉은들 나부끼지 않을 곳 없다. 꽃자리 한때라지만, 이미 누린 기쁨은 앗아갈 이가 없다. <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