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포탈방지법이 도입된다. 해외 직구에 필수적인 개인통관고유부호를 도용해 관세를 피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개인 피해를 막고 세금 탈루도 엄벌하겠다는 취지다. 개인통관고유부호는 수입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식별하기 위해 부여되는 번호다. 뒤늦게나마 관련 법 정비에 나선 국회와 과세 당국을 비롯해 세수 부족 상황에서 한 푼이 아쉬운 재정 당국도 세금 탈루를 막는 데 팔을 걷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관가 등에 따르면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문제를 국가가 관리·감독하도록 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번 발의는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한 물품을 ‘쪼개기 식’으로 개인 해외 직구 물품으로 위장 반입해 관세를 피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 이후 개인이 인터넷으로 해외에서 판매되는 물품을 직접 구매할 때 물품 가격이 150달러 이하(미국발 물품은 200달러 이하)면 수입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관세와 부가가치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문제는 해외 직구가 보편화되면서 이를 악용한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해외 직구 악용 적발 규모만 봐도 2020년 104억 원에서 2021년 281억 원, 지난해 1198억 원 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3년 새 1051%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관세청이 중국 광군제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등 해외 직구 세일 집중 시기에 맞춰 특별 단속을 실시한 9월부터 11월까지 10주 동안에만 810억 원 규모의 불법행위가 적발됐다.
단속 강화에 적발된 규모가 증가했을 뿐 고유부호 누적 발급 건수로 보면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유부호 누적 발급 건수는 2000만여 건이 넘어 20세 이상 성인 인구 2명 중 1명이 부호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도용을 의심해 재발급 받는 건수가 2017년 1만 1000여 건에서 2021년 3만 1000여 건으로 4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에서 고유부호 도용으로 관세가 줄줄 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도용 방법과 밀수 물품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브랜드 제품을 모방한 가짜 향수 밀수를 위해 불법으로 보관하던 국내 소비자의 고유부호 300여 개를 도용하거나 중추신경계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문신용 마취 크림을 밀수하기 위해 지인 60여 명의 고유부호를 사용한 업체들이 관세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일본산 의약품(소화제·동전 파스 등), 식품류(젤리 등) 28만 점(82억 원 상당)을 개인 사용 해외 직구로 가장해 들여와 정식 수입 물품인 것처럼 매장 내 판매하려다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개인정보 유출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세금이 새다 보니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법 정비와 관세청의 통관 관리가 여러 차례 지적됐다. 관세청도 고유부호 도용을 중대 범죄로 간주하고 단속 강화에 나선 바 있지만 관세법상 처벌 규정이 없어 개인이 직접 고유부호를 사용 정지 또는 재발급받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나마 처벌이 가능한 개인정보보호법도 악용하는 업자들의 70%이상이 해외 판매 업체에 해당해 국내법 적용이 쉽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블로그 운영자가 이달 처음으로 개인정보보호법으로 구속됐다.
정부는 관련 법의 국회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도 “지출 구조 조정에 집중하는 한편 관세 누수도 선제 대응한다는 입장에서 세수 확보에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