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상임상은 물론이고 이번에 공개된 추가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에피스클리'가 오리지널 의약품이 동일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관건은 가격입니다. 저는 사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과연 에피스클리 가격을 얼마에 책정할지가 더 궁금하네요. "
"아마 정부에서 더 궁금해들 할 겁니다. 지금은 오리지널(솔리리스) 가격이 너무 비싸요. 아무리 환자 수가 적다고 해도 재정 지출이 너무 심합니다. 바이오시밀러가 발매되면 오리지널 가격도 어느 정도 낮아지길 기대해 봐야겠죠. "
유럽혈액학회(European Hematology Association·EHA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7일(현지시간) 저녁.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독일 메쎄 프랑크프루트 컨벤션센터 인근 컨퍼런스룸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세계 각국의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30여 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EHA는 혈액학 전문가 5만5000여 명을 회원으로 보유한 유럽 최대 규모의 혈액학 관련 학술단체다. 매년 전 세계 1만 8000명 이상의 혈액학 전문가들이 모여 최신 연구 동향과 학술 성과를 공유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시밀러로 유럽 희귀질환 치료 시장 첫 도전
이날 세미나에서는 '에피스클리'의 글로벌 3상 임상 시험을 총괄한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2년 2개월에 걸친 임상 진행 기간 동안 겪었던 에피소드와 실제 처방 경험을 공유했다. 에피스클리는 미국 바이오기업 알렉시온(현 아스트라제네카)이 개발해 작년 한해 동안만 5조 원(약 37억 6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희귀질환 치료제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의 바이오시밀러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해 지난달 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희귀 유전질환인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Paroxysmal Nocturnal Hemoglobinuria) 치료에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다. 솔리리스는 2007년 미국과 유럽에서 PNH 치료제로 허가된 이래 비정형 용혈성 요독 증후군(aHUS·atypical Hemolytic Uremic Syndrome), 전신성 중증 근무력증(gMG·generalized myasthenia gravis), 시신경 척수염 스펙트럼장애(NMOSD·Neuromyelitis Optica Spectrum Disorders) 등 총 4가지 적응증을 승인 받았다. 이번에 에피스클리가 허가를 받은 유럽은 이미 2020년 4월 솔리리스의 물질 특허가 만료된 상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암젠의 '베켐브'와 간발의 차로 EC 허가를 받으며 전 세계 두 번째로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2020년 알렉시온을 인수하며 솔리리스의 판권을 넘겨받은 아스트라제네카가 바이오시밀러 발매 시기를 늦추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발매 시점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특허 장벽이 사라진 만큼 유럽 현지에서는 에피스클리의 유럽 판매가 임박했단는 게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였다.
◇ 한해 약값만 4억 원…유럽 의사들 ‘바이오시밀러 발매 시기·가격’에 관심집중
PNH는 인구 100만 명당 환자 수가 15명 정도에 불과하다. 유럽을 통틀어 PNH 전문가로 평가받는 전문의도 이날 모인 30명 내외 수준이다. 학회 본 일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련 전문가들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최한 학술 세미나를 찾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에서 허가된지 16년이 넘은 솔리리스는 바이알(0.3g/30ml)당 표시가격(list price)이 약 513만 원이다. 이번에 에피스클리가 허가받은 PNH의 경우 2주마다 3바이알 투여가 필요하다. 성인 환자 기준 한해 약값만 4억 원 가량이 든다는 얘기다. 그나마도 첫 발매 때와 비교하면 가격이 20% 가량 낮아졌다. 이날 모인 참석자들의 관심이 에피스클리의 발매 시점과 가격에 쏠린 이유다.
장 교수는 "전 세계를 통틀어 매년 4억 원의 약값을 평생동안 부담할 수 있는 환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며 "대표적인 초고가약인 솔리리스야말로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통한 접근성 확대가 가장 절실했던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에피스클리가 허가받은 PNH는 후천적으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적혈구 표면에서 보호 역할을 하는 CD55, CD59 단백질을 연결시켜주는 단백질(anchored protein)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질환이다. PNH 환자들은 적혈구가 체내 보체로부터 공격을 당하면서 지속적으로 용혈현상이 일어나 주로 야간에 혈뇨(피섞인 오줌)를 보는 증상이 나타난다. 적혈구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혈전이 생기기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으면 5년 내 35~40%가 사망하는 치명적인 병이다. 솔리리스는 적혈구 용혈의 원인인 보체단백질 중 하나인 C5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보체 활성화를 억제한다. 수혈, 단기간 스테로이드 사용과 항응고제 투여 등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의 치료를 받으며 연명해야 했던 PNH 환자들은 솔리리스 등장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솔리리스를 2주 간격으로 투여 받기만 하면 일반인과 다름없는 생존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정부 보험 없이는 치료제 투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도 전체 PNH 환자 500명 중 300명 가량이 적극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문제로 여전히 150명이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 삼성바이오에피스, 시장 발매 앞두고 ‘에피스클리’ 홍보에 총력
삼성바이오에피스는 8일부터 11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EHA 2023 연례학술대회에 참석한다. 앞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같은 학회에서 에피스클리의 글로벌 3상 임상 결과를 첫 공개했다. 올해는 모델링을 통해 에피스클리와 오리지널 솔리리스 간 동등성을 추가로 입증한 분석 결과를 소개한다. 학회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EC가 에피스클리의 판매를 허가한 만큼, PNH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전문가들에게 유럽 현지에서 제품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학회 개막에 맞춰 공개된 초록에 따르면 에피스클리는 유효성과 안전성, 약동학(PK·Pharmacokinetics), 약력학(PD·Pharmacodynamics) 등의 측면에서 오리지널 솔리리스와 차이가 없음을 추가로 입증했다. 선행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환자의 체중이 바이오시밀러 투여 시 PK에 영향을 주는 인자라는 점도 재확인됐다.
PNH 치료제로는 2주 간격으로 맞는 솔리리스의 반감기를 늘린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가 개발되어 판매 중이다. 울토미리스는 두 달에 한번만 맞아도 유사한 치료효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솔리리스와 마찬가지로 약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데다 아직 특허만료까지 한참 남았다. 후속약물 격인 울토미리스가 나와있는 데도 유럽 현지 의사들이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를 절실하게 기다리는 이유기도 하다.
장 교수는 "유럽은 대부분의 국가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통해 PNH 환자들의 약값을 지원한다"며 "스웨덴은 벌써부터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가 곧 나온다는 사실을 환자와 의사들에게 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오리지널보다 싼 값에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바이오시밀러 처방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권장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스웨덴 등 상당수 유럽 국가에서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 발매를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다"며 "기존에 솔리리스를 맞던 환자는 물론, 울토미리스를 맞는 환자들까지도 바이오시밀러로 처방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아직 에피스클리의 구체적인 유럽 출시 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의료현장의 절실한 상황을 알기에 현지 발매 일정을 앞당기는 데 힘쓸 계획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오리지널 의약품 간의 동등성을 다시 한번 입증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도 환자들에게 고품질 바이오의약품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