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이 힐하우스캐피탈로부터 4억 달러(약 5300억 원)의 추가 자금 조달에 성공하면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회사에 누적된 투자 유치액이 총 8조 원을 넘어섰다. SK온은 업계 안팎에서 제기돼 온 재무 우려를 덜어냄과 동시에 이제부터는 해외 공장을 증설하는데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모회사 SK이노베이션(096770)이 지난해 말 앞장서서 2조 원을 투입한 것이 국내외 기관들의 봇물 투자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SK이노의 조 단위 투자 배경에는 최태원 회장의 결단이 자리한 가운데 최재원 SK온 수석 부회장이 투자 유치와 경영 관리를 지휘 하면서 외부와의 협상도 탄력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SK이노베이션은 8일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 SK온이 싱가포르계 투자사 3곳에 총 4억 달러 규모로 신주를 발행하는 것을 승인했다. 해외 큰 손인 힐하우스캐피탈이 싱가포르 투자사들을 통해 대부분을 출자할 예정이다.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에 소속된 힐하우스캐피탈은 원래 지난달 컨소시엄 내 미국 블랙록, 카타르투자청 등과 함께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으나 내부 승인이 늦어지면서 다소 시차를 두고 이번 SK온 유상증자에 막판 합류했다.
이로써 SK온은 지난해 한국투자PE-이스트브릿지 컨소시엄(1조2000억 원)을 시작으로 힐하우스 포함 MBK파트너스 컨소시엄(11억6000만 달러), 사우디아라비아 SNB캐피탈(1억4400만 달러)로 이어지는 유상증자를 모두 성공시켰다. 여기에 지난달 9억 달러 규모로 유로본드를 발행했고 현대차·기아로부터 추가로 2조 원을 차입하는 등 지금까지 자본과 부채를 포함해 총 8조1700억 원에 이르는 자금 조달을 완성했다.
이번 SK온의 투자 유치는 전세계 금융 시장이 경색된 가운데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 주목 받는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후발 주자로 평가 받는 SK온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던 수율 문제를 극복하고, 적자도 빠르게 줄이면서 대형 투자 유치를 성사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SK온은 지난해 약 1조 원, 올 1분기 345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가운데 하반기엔 흑자 전환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까지 유입되면서 증권가에서는 2분기 적자 규모를 100억 원 이하로 예상하고 있다.
기업 가치 평가에서 외부 기관과 견해 차를 극복한 것도 최근 투자 유치의 디딤돌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SK온이 최초 투자 유치를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회사는 40조 원 수준의 기업 가치 평가를 원했다. 그러나 컨소시엄을 주도했던 MBK파트너스와 한국투자PE가 각각 해외와 국내 투자사 및 SK온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내며 양측은 중간점을 찾았다. SK온은 이번 유상증자에서 약 25조 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평가 받았다.
최재원 수석 부회장을 비롯해 SK이노의 김양섭 부사장(CFO), 김경훈·박종욱 SK온 재무담당 부사장 등 최고위급 임원들이 국내외 투자사들을 두루 만나며 직접 뛴 것도 성과의 배경이라는 진단이다.
대규모 자금 조달에다 실적까지 개선된 SK온의 재무 구조는 향후 훨씬 탄탄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SK온은 지난달 나이스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3개 신용평가사로부터 'A2+' 등급을 획득하면서 앞으로 사채 발행 등을 통한 추가 자금 조달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026년을 목표로 상장(IPO)까지 추진하고 있어 향후 자금 조달 경로는 더욱 다양하게 넓힐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는 2025년까지 연간 배터리 생산능력을 최소 220GWh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운 가운데 해외에서 대대적인 공장 건설에 나설 전망이다. 중국, 헝가리 등에서 기존 공장 라인을 증설하는 것에 더해 미국에서는 현대차, 포드 등과 합작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온은 상장전지분투자(IPO)를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 중”이라며 “재무구조를 견고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진출 확대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