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라는 큰 틀에 합의하면서 이제는 증원 규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와 의협은 적게는 351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을 놓고 ‘샅바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양측이 정원 확대 규모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더라도 붕괴 위기에 놓인 소아과 등 지역·필수의료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한 단기 대책 마련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9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와 의협은 15일 제11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 협의를 이어간다. 앞서 양측은 8일 열린 제10차 회의에서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한 의사 인력 확충 방안을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시점과 증원 규모가 합의문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양측은 2025년 입시부터 이 방안을 적용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1학년도 기준 3253명이었던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계속 줄어 2006년에는 195명 감소한 3058명까지 내려갔다. 이러한 수치는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전문 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에 따르면 2025년 성·연령을 감안한 활동 의사 공급은 수요 대비 5516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의사 부족은 이후 급격히 늘어 2030년에는 1만 4334명, 2035년에는 2만 7232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증원이 불가피하다면 보강 인력을 의약분업 이전의 정원에 맞춰 351명만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 소재 상급 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우리 병원도 인력이 부족할 정도면 다른 병원의 상황은 더 어려울 것”이라며 “의대 정원 확대가 지역·필수의료 강화라는 낙수 효과를 낳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인력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증원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개원의 등의 반대를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20여 년 전 줄인 정원 351명을 늘리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500명+α’를 제시하며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가 갖고 있는 복수의 안 중에는 512명 확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복지부 관계자는 “검토는 모든 숫자를 놓고 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 현재까지 무게를 두고 있는 숫자는 없다”며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의협과 논의를 해가면서 숫자를 구체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증원 인력을 1000명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실련은 4월 기자회견을 열어 필수의료 취약 지역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최소한의 필수의료 인력과 시설을 보장해야 한다”며 “필수의료 의사 부족과 지역의료 불균형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안으로 제시했던 방안이 ‘권역별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최소 1000명 증원’이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필수·지역의료로의 유입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그 효과는 10~15년 후에나 나타나는 만큼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돌봄 의료 서비스 수요 증가를 감안할 때 정부안과 경실련 주장의 중간 정도인 700~800명 정도 확대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대 신설과 관련해서는 “전국에 정원이 50명인 의대가 많다”며 “신설보다는 기존 의대 정원 증원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