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에서 불법 행위를 저지른 노동조합에 공동으로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규정한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법리에 위배된다는 학계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와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9일 노동법이론실무학회가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개최한 제59회 정기학술대회 및 정기총회 자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마련한 노조법 개정안 제3조가 심각한 법적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민법은 다수가 공동으로 저지른 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하면 모두가 함께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개인의 손해배상 액수를 구분해 산정하는 등 책임을 명확히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다.
하지만 노조법 개정안 제3조는 공동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에도 개인별로 손해액을 각자 따져 묻도록 규정했다. 만약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용자가 불법행위에 가담한 개개인의 혐의와 손해액을 입증하지 못하면 법원은 청구를 기각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불법쟁의행위에 가담한 조합원은 피해자인 사용자에 대한 가해 행위에 상호 기여를 하게 된다”며 “이로써 전체 손해에 대한 책임부담이 정당화되며 자신의 기여도와 관계 없는 부분에 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 밝혔다.
이어 “법리와 대법원 판례를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의 입법으로 변경하려 한다면 국민적 공감대와 치밀한 법논리적 설득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하지만 노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시도하는 측은 공감대와 설득력 확보에 모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재계에서도 해당 조항이 사실상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어렵게 만들어 노조의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수백명의 조합원들이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회사 건물을 불법 점거한 전례가 있는데 그 당시 현장에 있던 조합원들은 모두 명찰을 제거하고 복면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해 신원확인이 어려웠다”며 “만약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조합원의 신원확인을 할 수 없을 경우 증거 능력 부족으로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요 기업 3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 기업 90%가 손해배상을 개인별로 산정하도록 한 조항이 ‘노조의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사실상 제한하는 조치’라고 응답한 바 있다.
재계는 현대자동차 생산 라인을 1시간 넘게 불법 점거한 노동자에 손해배상이 청구된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들여다보는 상황에 더 큰 우려를 표한다.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를 뒤집으면 산업 현장에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과 같은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대법이 들여다보는 사안은 10년 전 현대차(005380)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불법 폭력 사태다. 앞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250명은 2013년 7월 10일 회사 관리직 사원들과 몸싸움 끝에 현대차 울산공장 안으로 진입해 의장 라인을 63분간 불법 점거했다. 현대차는 불법행위에 참여한 조합원 65명에게 약 4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법원은 조합원 5명에 대해 약 2300만 원의 연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심 판결 후 조합원들은 즉시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현재 대법 전원합의체는 일반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 제한의 개별화가 가능한지, 일반조합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쟁점으로 심의 중이다. 이르면 이달 내로 심의 결과가 발표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원합의체 심의가 판례 변경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조합원의 공동불법행위에 대해 연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기존의 판례에 변화가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판례가 바뀌면 학계가 이날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 노조법 제3조 개정안이 통과된 효과를 낼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법 전원합의체가 판례를 바꾸면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며 “국회 입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대법 판결은 견제할 방법이 없어 심의 결과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