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종합병원 산하 연구소에서 혈관중재시술 보조로봇 개발을 담당한 A씨는 지난 2020년 2월 로봇 도면 등 관련 자료를 빼돌린 후 이를 활용한 연구계획서 등을 올해 2월 중국으로 유출했다. 중국 출신인 A씨는 2015년부터 연구소에 취업해 시술로봇 개발을 해왔다. 글로벌 혈관중재시술 로봇시장 규모는 6000억 원에 이른다. 이번에 경찰의 해외기술유출 수사망에 걸린 A씨는 중국 정부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자 1000명을 지원한다는 목표로 진행한 ‘천인계획프로젝트’로부터 자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로 인한 국가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경찰이 관련 수사팀을 수사대로 격상하며 대규모 인력 보강에 나섰다. 핵심기술 유출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경제전쟁인 만큼 수사력을 강화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11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은 기술탈취 불법행위를 엄단할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경찰청 내 산업기술보호 수사팀을 수사대로 격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찰이 수사 인력을 늘리려는 것은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건이 1년새 2배 증가하는 등 산업 경쟁력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경찰이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간 국내 핵심 산업기술 탈취 시도를 막기 위해 특별단속을 벌인 중간결과를 보면 해외로 기술을 유출한 사건은 8건으로 집계됐다. 단속 건수는 많지 않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0% 급증한 수치로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다는게 경찰의 분석이다.
국가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로 인한 유무형적 피해는 막대한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국가정보원이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산업기술 해외유출에 의한 피해액은 25조 원에 이른다.
국내 모 업체대표 B씨는 포스코가 특허등록하고 정부가 국가첨단기술로 지정한 강판 도금량 제어장비 ‘에어나이프’를 4대 수출하고 3대를 추가로 해외에 빼돌리려다 특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수사당국은 B씨의 기술유출로 해외 철강사가 6600억 원의 부당이득을 얻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해외 기술유출과 함께 국내 기업 간 기술유출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국내외 경제안보 위해범죄 사범은 96명으로 전년 대비 24.67%(77명) 증가세다. 특히 피해기업별로 보면 중소기업이 29건으로 전체의 83%를 차지했고, 대기업은 6건으로 17%에 그쳤다.
적용 죄종별로는 영업비밀유출사건이 26건으로 74.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업무상배임 5건(14.3%), 산업기술 유출 3건(8.6%) 순이었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관계자는 “오는 10월까지 진행되는 특별단속기간에는 특히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국내 기업의 핵심기술 유출범죄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며 “산업기술유출이 의심되거나, 피해를 입었다면 경찰청 ‘산업기술유출 신고센터’(온라인)에 신고하거나 가까운 경찰서 안보계·시도경찰청 산업기술보호수사팀을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