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첫 변론? 누가 피해자인가

◆정민정 디지털전략·콘텐츠부장

박원순 미화 다큐 '첫 변론' 내달 개봉

인권위 '2차 가해' 우려에도 강행 태세

옳고 그름 제대로 가려내기 위해서도

누가 피해자인지 사회가 답해야 할 때

정민정 디지털전략·콘텐츠부장정민정 디지털전략·콘텐츠부장




성추행으로 피소된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이 7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박 전 시장의 측근 등 50여 명을 인터뷰해 쓴 책 ‘비극의 탄생’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 포스터에는 ‘세상을 변호했던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는 ‘애절한’ 문구가 담겼다. 예고편에는 “진실을 바라는 시민의 마음이 모였을 때, ‘2차 가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침묵을 이길 수 있다”며 ‘2차 가해’ 논란을 쓸모없게 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박 전 시장은 딸 또래의 피해자를 4년이나 성추행했다. 침실로 불러 신체를 접촉하고 속옷 차림 사진, 음란한 문자메시지를 보내다가 고소당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회가 6개월간 해당 사건을 조사해 피해자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최근 인권위는 “(영화에) 피해자를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2차 가해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도 내놓았다.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 씨가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행정소송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편함을 줬다고 보여 피해자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강 씨는 항소심에서 “제 남편은 억울한 피해자”라며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끝이 보이지 않은 싸움판에 내몰리며 피해자의 상처는 계속 덧나고 있다. 피해자를 대리해온 김재련 변호사는 “유튜버 한 명을 소송하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그런 행동을 하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이 나온다. 피해자는 무슨 돈으로 소송을 계속할 것이며 이미 판단받은 것을 언제까지 다시 얘기해야 하나”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보다 못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영화 제작진을 향해) 추모도 좋고 예술도 좋은데 먼저 인간이 돼라”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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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성 평등, 약자 보호 등 도덕적 자산을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행세해온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그런 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초기에 피해자 보호는커녕 집단 린치에 매달렸다. 장례식 때는 박 전 시장을 ‘맑은 분’이라 추켜세우며 ‘임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서울 전역에 내걸었다. 유족 측은 최근 경기도 남양주의 ‘민주 열사 묘역’으로 박 전 시장의 묘를 이장했다.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 묘의 바로 뒤다. 하지만 이 기막힌 상황 속에서도 민주당은 꿋꿋하게 입을 닫고 있다. 3년 전 ‘임의 뜻을 기억하겠다’고 했던 다짐을 이런 식으로 실천하려나 보다.

해당 영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다큐를 표방했지만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조명하지 않고 불리한 내용은 지운 채 측근 인터뷰만을 편집해 미화했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담은 영화 ‘그대가 조국(2022)’과 판박이다. 타이틀부터 남다른 ‘그대가 조국’은 감성적인 음악과 화려한 영상, 호소력 짙은 내레이션으로 조 전 장관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해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징역 4년 선고가 확정된 것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누적 관객 수가 33만 명에 달했으니 조 전 장관의 상품성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 재판정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누가 죄인인가’라고 되묻는다. 영화 ‘첫 변론’의 개봉으로 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피해자는 우리 사회에 ‘누가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 ‘첫 변론’ 상영이 예정된 만큼 차제에 누가 피해자인지 제대로 가려내야 할 것이다. 옳고 그름, 죄와 벌,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답부터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물려줄 수 있지 않겠는가.

정민정 디지털전략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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