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이 글로벌 경기 침체 속 하반기 경영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30여 개 그룹사 최고경영자(CEO)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발목 부상으로 목발을 짚은 채 등장한 최 회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저녁까지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그동안 최 회장은 회의의 마무리 발언을 맡았지만 올해는 먼저 화두를 던지고 각 그룹사 CEO들이 세우고 있는 위기 극복 전략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진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계열사별 자금 조달과 투자 진행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와 바이오에 대한 전략도 치밀하게 점검했다.
SK그룹은 15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최 회장 주재로 상반기 최대 전략 회의인 ‘2023 확대경영회의’를 열었다. SK 확대경영회의는 8월 ‘이천 포럼’, 10월 ‘CEO 세미나’와 함께 그룹 최고 경영진이 모여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연례 회의다. 최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006120) 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주)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096770)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000660) 부회장, 추형욱 SK E&S 사장, 지동섭 SK온 사장, 유영상 SK텔레콤(017670) 사장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중 패권 갈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와 공급망 불안 등 글로벌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하반기 경영 전략을 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전략과 함께 글로벌 우수 인력 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경기 침체의 장기화 속 각 그룹사가 정한 파이낸셜 스토리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점검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파이낸셜 스토리는 매출과 영업이익 같은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을 강화해 가치를 높이자는 경영 전략이다.
그룹의 주력 사업인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에 대한 점검도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반도체 한파가 길어지면서 지난해 4분기부터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올 2분기에도 3조 원 수준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다만 4분기부터는 적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취재진과 만나 “올 하반기 전략이나 경영 회의 내용은 비공개여서 말을 못한다”며 “솔리다임 적자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터리 사업을 이끄는 SK온도 최근 8조 원의 자금을 확보해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대규모 설비 투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날 SK온은 추가 조달 방안 등 차질 없는 설비 투자를 위한 계획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경기 악화에 따른 여러 대응책을 논의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재계의 경영 전략 회의는 이어진다. 삼성전자 경영진도 조만간 모여 하반기 경영 전략과 관련해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또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도 다음 달 중 하반기 전략 회의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 불확실성 해소까지는 여전히 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이를 돌파할 신사업 등에 대한 돌파구를 찾는 데 집중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