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에 나섰다. 김형동 의원을 비롯한 10명의 의원들은 지난달 31일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차별금지 사유에 ‘성별·국적·신앙·사회적 신분’ 외에 ‘고용형태’를 추가하고 사업장 내에서 동일가치노동에는 동일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번 법률 개정의 명분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다. 최근 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간의 임금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법률 개정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고용형태 간 임금격차 완화에 대해서는 야당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도 강조한 바 있어서 얼핏 보면 법률 개정 작업에 걸림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임금격차를 줄이는 방법론부터 보자. 법률안의 제안자들은 정규직·대기업 등 고임금자의 임금을 줄이고 비정규직·중소기업 등 저임금자의 임금은 올리는 방식을 거론한다.
문제는 임금을 낮추는 것이 취업규칙상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규정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과반수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게 돼 있다. 이 때문에 고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을 인하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벌써부터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기업 노조들은 이번 법률 개정안이 상위 임금을 깎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고임금자의 임금을 줄일 수 없다면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결국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슈가 임금의 상향 평준화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재계가 이번 법률 개정안을 걱정스럽게 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동일가치노동’이라는 모호한 잣대도 문제다. 법률안은 ‘사업장 내에서 고용형태가 서로 다른 근로자들 간의 동일가치노동에 대하여 동일한 임금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동일가치’의 기준에 대해서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만으로는 기업 이익이나 부가가치 생산에 대한 기여도, 기업 핵심 업무와의 관련 정도 등 임금을 결정하는 수많은 다른 요소들을 반영할 수 없다.
무엇이 동일가치냐에 대해서는 앞으로 사회적 공감대 형성 작업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 동일가치 업무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직무 분석을 통해 모든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연공급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직무가치의 분석은 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동일가치 동일임금을 강행할 경우 사업장 내에서 많은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사업장 안에서 근무하는 경우라도 원청과 하청 근로자들의 생산공정이 다르면 이것을 동일가치로 인정할 것인가 등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정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이자 근로자 사이에서 역차별 논란이 일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이미 보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의 오랜 고질병 가운데 하나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임금격차의 근본 원인인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임금체계도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런 것이 안 된 상태에서 동일가치 동일임금제 시행을 밀어붙이면 사업장 내에서 혼란만 커질 뿐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바라는 경제 회복도, 일자리 창출도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