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가 사회적 대립을 조율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고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는 정치 양극화에 따른 여야 거대 정당 중심의 진영 대결이 거론된다. 그래서 여러 정당들이 의석을 확보해 국회에 진출하는 다당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연 다당제가 우리 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현행 선거제에서는 각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만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1표만 더 많이 얻어도 당선이 되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의견은 사표가 된다.
51%의 승자라도 100%를 독식하기 때문에 나머지 49%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며 현행 선거제 대신 득표 비율대로 의석을 나눠서 보다 많은 정당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다당제를 지지하는 주요 논리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전체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반대하는 유권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불만과 민원을 수용하면서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한다. 자신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상대 정당과 그 지지자를 숙청하고 척살하는 내전의 상황이 아니다.
양당의 경쟁은 다툼의 강도가 높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대안의 선택이 명료하고 중간·중도 지점을 분별하기 쉽다. 그러나 여러 정당이 문제에 관여하면 국민을 위한 선택 대신 각 정당 간 이해관계가 맞닿는 곳, 즉 ‘야합’의 최적지를 찾는 데 골몰할 수 있다. 단순했던 분쟁의 전선이 오히려 넓어지고 복잡해지며 때로는 극단화된다. 미니 정당들의 비토에 국회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 여러 정당들이 서로 협력할 것이라는 가정은 사실이 아닌 믿음이다.
과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아야 의석을 얻을 수 있는 규칙에서는 특정 진영의 집중된 지지만 받는 정당의 원내 진입이 어렵다.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유권자의 호의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진영을 넘어 상대측의 정책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다당제로 의석 획득이 쉬워지면 각 정치 세력은 특수 이익과 좁은 가치에 매몰되기 쉽다. 유력 활동가들이 팬덤을 동원해 탈원전당·친북노조당·무상소득당 등을 만들고 어렵지 않게 1~2석을 획득해 입법부에서 ‘영업’한다고 가정해보자. 국회는 특정 집단의 지지를 위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포퓰리스트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선거에서 주요 양당에 기회를 부여하고 책임도 물었으며 때로는 무게감 있는 제3의 정당을 등장시켰다. 정치 개혁의 첫 번째 과제는 이러한 국민의 의사를 기존 정당이 더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당제에서는 결국 ‘목소리만 큰 소수’가 활개 치는 무책임의 정치가 만개할 가능성이 크다. 원내 정당이 늘어난다고 해서 ‘착한 정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 차라리 우리 정치에 대한 불만이 곱절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