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8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크림반도의 포로스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보수파들이 일으킨 군부 쿠데타로 인해 감금됐다. 보리스 옐친 등 반쿠데타 시위로 인해 쿠데타는 진압되지만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그해 12월 퇴진하고 소련 연방도 해체됐다.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냉전기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했으나 곪을 대로 곪은 체제를 혁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련이 해체된 데는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 경쟁과 소련 봉쇄 정책도 한몫했지만 기본적으로 체제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게 컸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도 1993년 보수파가 국회를 점거하고 탄핵을 시도하자 군을 동원해 무력 제압했다. 그렇지만 체제 갈등에 시달리다가 1999년 말 임기 6개월을 남기고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최근 러시아 용병 기업(PMC)인 바그너그룹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일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결국 고르바초프나 옐친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시차를 두고 집권 세력의 실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소련정보기구(KGB) 간부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옐친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다가 권력을 거머쥔 뒤 정적 암살, 언론 탄압, 부정선거 등 독재를 해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에서 전범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는 종신 집권을 꿈꿨지만 자신의 사냥개로 치부하던 용병의 배신으로 인해 ‘스트롱맨’이라 불리던 리더십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는 잡범 출신으로 크렘린에서 자신의 식사를 챙기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이 국방장관과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의 교체를 요구하는 동안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더욱이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바그너그룹이 23일 밤 러시아로 총구를 거꾸로 돌린 뒤 24일 밤 11시께 전격 철수하기 전까지 모스크바 외곽 200㎞까지 진격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26일 밤 TV 연설을 통해 “군에 유혈 전투는 안 된다고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내년 대선에 출마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전후로 여러 용병 기업을 키워왔다. 지난해 초 침공한 우크라이나는 물론 중동·아프리카 등의 분쟁 지역에서 각종 악역을 맡겼다. 그는 용병을 이른바 해결사로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충수가 됐다.
이번 쿠데타는 국제사회에 큰 충격파를 일으키며 여러 후폭풍을 불러올 조짐이다. 앞으로 러시아 군과 국민의 사기 저하로 인해 내부 분열이 커지면 푸틴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과 러시아 경제 제재를 더욱 강화하면 이번 전쟁의 추가 우크라이나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세계가 염원하는 종전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성급한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막다른 골목에 몰릴 경우 현재 점령 중인 자포리자 원전에 위해를 가하거나 최근 벨라루스에 배치하기 시작한 전술핵의 버튼을 누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 카호우카 댐 붕괴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제사회는 현재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시도하는 동안 종전을 위한 중재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미 수많은 군인은 물론 수만 명 규모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왔고 곳곳이 심각하게 파괴됐다. 세계경제에도 지속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나온 한국전쟁을 겪고 지금도 분단에 시달리는 우리 입장에서는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아울러 에너지, 건설, 도로·전력 등 인프라, 정보기술(IT), 학교, 병원·바이오헬스 같은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도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모색할 때다.